숫눈길
김현지
그곳에 가 보아야지
고라니가 긴 목을 늘이고 먹이를 찾고 있을
숲속 새하얀 숫눈길 따라 걸어 보아야지······
아래로 내달리는 바깥의 수은주가 댕, 댕,
경고음을 울리는 겨울 끝 무렵
멍하니 앉아 천정까지 닿은 책장을 바라본다
책의 숲속에서 바람이 불고 강이 흐른다
시서화詩書畵 빼곡한 저 숲,
내가 스쳐왔거나 잊혀졌거나
미처 눈길 못 주고 지나온 행간마다
잉걸불로 남은 꽃불 모락모락 타오르고
타다 남은 숯검정들이 파란 씨앗으로 일렁인다
처음 눈 맞추며 켜켜이 젖어들던
시의 능선, 산문의 골짜기, 고전의 언덕······
오래전부터 내 곁에서 나를 길들인
푸른 성채 같은 책들이 죽죽 뻗은
자작나무 겨울 숲으로 걸어온다
오래 잊고 있었던 새하얀 숫눈길
-전문 (p.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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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유 제2집 『날마다 피어나는 나팔꽃 아침』에서/ 2022. 5. 9. <지혜> 펴냄
* 김현지/ 경남 창원 출생, 1988년 『월간문학』 신인상, 시집『연어일기』『포아풀을 위하여』『풀섶에 서면 내가 더 잘 보인다』『은빛 눈새』『그늘 한 평』『꿈꾸는 흙』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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