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이병철_욕망의 획일화를 향한 경고(발췌)/ 곳 : 권성훈

검지 정숙자 2022. 7. 11. 02:54

 

   

 

    권성훈

 

 

  철 지난 바닷가의 유원지

  부르면 올 것 같은

  바다를 바라보면서 바다를 찾는 눈썹이 젖어있네

 

  허공으로 향해있던 눈동자 별빛같이 내게로 쏟아진다

 

  돌이켜보면 들키지 않을 정도로 흔들렸으므로

  당신에게 가는 녹슨 거짓말이 걸어 다닐 때마다

  삐걱거리는 태엽처럼 모여들고 있었지

 

  썰물을 옆에 끼고 다니는 해변

  멀리 갈매기에게 낡은 파도를 던져주며

  출렁이는 상한 웃음을 수습한다

 

  모래알이 눈송이같이 빨려 들어가 붉게 녹고 있지만 아프지 않네

 

  삼키고 뱉고 삼키는 대로 유영하고 흡착하는

  둥글고 부드러운 빨판을 나누어 씹을 때마다

  이별은 수초처럼 자라나고

 

  그곳에서는

  꽃을 꽂으면서 꽃을 찾지 못하는

  축일의 케이크 같이 버려진다

     -전문-

 

   욕망의 획일화를 향한 경고/ - 김상미, 권성훈의 신작 소시집(발췌) _이병철/ 시인 · 문학평론가

  공직자와 그 자녀들이 학력을 위조하고, 논문을 베끼고, 이력을 부풀리는 것도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스펙'이 있어야만 존경받을 수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내면보다 외피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 왜곡된 믿음 안에서 개인의 능력과 성품 같은 것들은 희미해진다. 문학도 별반 다르지 않다. 대학 강의를 하면서 보니, 문학을 공부하는 어린 학생들이 이른바 '메이저'로 불리는 대형 출판사의 시집과 소설집 외에는 읽지 않는다. 메이저 출판사에서 책을 냈느냐 못 냈느냐로 작가의 문학적 성취를 평가하는 습관은 기성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면서 또 새로운 세대가 스스로 답습한 것이기도 하다. 등단이라는 제도가 권위적이고 차별적이라며 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던 작가들도 대부분 메이저 안에서 형성된 커뮤니티에 속해 있다.

 

     *

 

  원본 없는 시뮬라크르만 횡행하는 가상성의 시대, 가볍고 일회적이고 편리한 것만이 각광 받는 무통 문명의 시대에 사람들이 "들키지 않을 정도로 흔들"리며 스스로 "녹슨 거짓말"이 되어 가는 현상을 날카롭게 통시한 것이다. '들킨다'는 것이 어떤 실체나 본질이 드러남을 의미한다면, 들키지 않을 정도로만 흔들리는 사람들은 들킬 만한 무언가를 애초에 갖지 못한 게 아닐까? '빈 수레'임이 들통날까 봐 허위 스펙, 위조, 허영, 겉치레 등 "녹슨 거짓말"로 자신을 방어하면서 철저한 허깨비로 사는 것이다. 자기 존재를 다 들어다 바쳐 타인과 구별되는 독창적 열정을 갖는 것보다 그저 "남들 다 하는'에 속한 채 그림자로서 시뮬라크르의 충실한 시민이 되는 편이 훨씬 안온하기 때문이다. (p. 시 119 / 론 124 *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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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이펀』 2022-여름(25)호 <신작 소시집/ 리뷰> 에서

   * 권성훈/ 1970년 경북 영덕 출생, 2002년『문학과의식』 시. 2013년 『작가세계』 평론 신인상 당선, 시집『밤은 밤을 열면서』『유씨 목공소』『푸른 바다가재의 정화를 받다』, 저서『시치료의 이론과 실제』『폭력적 타자와 분열하는 주체들』『정신분석 시인의 얼굴』『현대시 미학 산책』『현대시조의 도그마 너머』, 편저『이렇게 읽었다   설악무산 조오현 한글 선시』

   * 이병철/ 1984년 서울 출생, 2014년 『시인수첩』에 시가, 『작가세계』에 평론이 당선돼 작품 활동 시작, 시집『오늘의 냄새』『사랑이라는 신을 계속 믿을 수 있게』, 평론집『원룸 속의 시인들』, 산문집『낚 : 詩 - 물속에서 건진 말들』『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사랑의 무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