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짝 핀 벚꽃나무 아래서
김상미
어느 쪽으로 가야 하나요?
갈 곳이 없어요
가야 할 곳이 없어요
그런데도 꼭 가야 하나요?
길 따라 화살표 따라 바삐 가는 사람들
그들 속에 섞이지 않으면 안 되나요?
어디에도 내 길은, 나만의 길은 없나요?
한참 그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들이 뒤돌아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요
왠지 내 길이 아닌 듯 왠지 내 방이 아닌 곳에 들어온 듯
그냥 나 혼자만이라도 정해진 길대로 화살표대로 살지 않으면 안 되나요?
눈부시게 아름다운 벚꽃나무 아래
그냥 맨발로 서 있으면 안 되나요?
모두가 떠나가면서 버린 것들
그 속에 남은 아주 쬐그만 사랑
아무도 되찾으러 오지 않을 그 쬐그만 사랑만으로도
활짝 핀 저 벚꽃이 마냥 좋다면 눈물 나게 좋다면
그냥 이대로 살아도 되지 않을까요?
한 사람쯤은 자신을 벗 삼아 자연을 보호막 삼아
그렇게 살면 안 되나요?
최후의 가장 큰 꿈이
최후의 가장 큰 아픔이 되어 돌아온대도
또다시 길 따라 화살표 따라
저 의기양양한 공허 속을 떠돌긴 싫어요
그냥 이곳에 남아 있으면 안 되나요?
나에게 일어난 일은 모두 나의 책임
오래전 내 심장 깊이에서 깨어져 부서진 내 거울,
그 거울 속 내 얼굴처럼?
-전문-
▶ 욕망의 획일화를 향한 경고/ - 김상미, 권성훈의 신작 소시집(발췌) _이병철/ 시인 · 문학평론가
오늘날 한국사회의 가장 큰 병폐는 '욕망의 획일화'가 아닐까 싶다. 규격화된 똑같은 아파트, 무채색의 세단 승용차, 연예인이 입었다는 이유로 유행하는 옷, 돌림노래 같은 댄스음악, 성형수술, 남들 다 하는 거, 남들 보기 좋은 거, 남들이 부러워하는 거······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SNS에는 비슷비숫한 삶의 방식과 취향들이 전시되고, 사람들은 그것을 욕망한다. 사람들이 자랑하기 위해 SNS에 올리는 명품 가방, 브랜드 아파트, 비싼 골프채, 풀빌라에서 즐기는 호화로운 휴가, 명문대 합격, 대기업 입사, 비트코인 수익, 인맥 따위는 모두 사회로부터 학습된, 타자화된 욕망들이다.
*
"길 따라 화살표 따라 바삐 가는 사람들/ 그들 속에 섞이지 않으면 안 되나요?/ 어디에도 내 길은, 나만의 길은 없나요?" 라고 물으며 정형화되고 규격화된 보편다수의 삶을 거부하는 시인은 "그냥 나 혼자만이라도 정해진 길대로 화살표대로 살지 않"기를 결심한다. 그리고 마침내 잘 닦여진 포장도로를 벗어나 척박하고 울퉁불퉁한 돌길, 가시덤불이 울창한 숲 속의 길 아닌 길로 들어간다. (p. 시 112-113 / 론 124 *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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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펀』 2022-여름(25)호 <신작 소시집/ 리뷰> 에서
* 김상미/ 1957년 부산 출생, 1990년『작가세계』로 등단, 시집『모자는 인간을 만든다』『검은, 소나기 떼』『잡히지 않는 나비』『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산문집『아버지, 당신도 어머니가 그립습니까』『오늘은 바람이 좋아 살아야겠다』
* 이병철/ 1984년 서울 출생, 2014년 『시인수첩』에 시가, 『작가세계』에 평론이 당선돼 작품 활동 시작, 시집『오늘의 냄새』『사랑이라는 신을 계속 믿을 수 있게』, 평론집『원룸 속의 시인들』, 산문집『낚 : 詩 - 물속에서 건진 말들』『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사랑의 무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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