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읽는 사람
이병일
오름은 푸르다, 부푸는 것도 있고, 푹 꺼지는 것도 있다 드넓어 숨을 곳이 많은데, 정작 숨은 곳이라곤 몸밖에 없다
죽어서도 피 흘린 자를, 달래기 위해 관을 만든다 사돈은 팥죽을 쑨다 대패와 망치질로 죽음 앞에서 더 용감해진다
오름에 서 있으면 저 수평선에서 검은 것이 쏟아진다 물굽이가 잘 인다 그렇담, 저 관은 말 한 필이 아닌가
말굽은 어디론가 흘러가도 이상할 게 없으니, 사십구일 동안 떠돌아다녀도 닦달할 필요가 없다
어떤 순탄한 영혼이 제 이름을 잊어서 오름으로 섰다 하여 오름은 다 자란 이름이 아닌 덜 자란 것들의 이름이 아닐까?
오름은 아무것도 입지 않은 맨몸이다 벌거벗었지만 제 아무리 들여다봐도 표가 나지 않는다
나는 오름을 읽는 사람, 침묵을 핑계 삼아 죽은 자들의 말문을 채집하러 왔다 귀와 눈을 들었다 놓았다 오름 속엔 이야기가 시작되는 사람이 있다 죽으려야 영원히 죽을 수가 없다
누가 봐도 변하지 않는 것은 죽음인데, 나는 여전히 오름의 바깥이 어디인지 모른다 죽은 자여, 어서 고향으로 돌아가자!
그렇게 나는 봄눈이 가진 흰빛으로 오름을 씻어주었지만 육신에는 마른버짐만 피었다 진다 작은 돌에도 가물가물 빛이 돈다
-전문-
▶ 태어날 죽음을 향한 벽화_이병일 작품론(발췌) _성현아/ 문학평론가
그는 특기할만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고요한 사물에서도 죽음을 읽어낸다. 이 시에서는 "오름"을 죽어간 영혼으로 감각한다. "죽어서도 피 흘린" 영혼을 달래기 위해 "관"을 만드는 광경은 관에도 누워보지 못하고 죽어간 제주 4 · 3 사건의 희생자들을 떠오르게 한다. 이들이 담길 "관"을 "말 한 필"로 변주해내는 시인은 "말굽"이 갖는 역동성을 근거로 관 속에 담긴 영혼들이 "사십구일"을 꼬박 떠돌아도 닦달할 필요가 없다며 충분한 여유를 주고자 하는 온정을 내비친다. 시인은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표가 나지 않는 오름을 "읽는 사람"이 되기를 자처한다. 이는 그의 시편들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화자의 역할이자 자리다. 그의 시에는 "삶의 다른 형식을 투시하려는 간단치 않은 의지"4)가 녹아있는 것이다.
죽은 자들의 입을 얻어("죽은 자들의 말문을 재집") 그들의 이야기를 모으려 했던 "나"는 도리어 오롯이 그들의 눈과 귀가 되어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을 체험하게 된다. 그들이 되어본 "나"는 흰빛으로 "오름"을 씻어준다. "흰빛"은 이병일의 다른 시 「흰빛으로 들어가는 입구」5)에서 "더 이상 방치될 어둠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나"가 오름에 담긴 영혼을 읽어내려 노력하기에, 그들이 가진 어둠은 더는 방치되지 않게 된다. 이 행위는 누구의 눈에도 들지 않는, 보잘것없어 보이는 "작은 돌"에까지 빛이 돌도록 하는 희망적 행위가 된다. (p. 시 48-49 | 론 56-57)
4) 유성호, 「감각의 구체로 가닿는 생의 파동과 기원」, 『옆구리의 발견』 해설, (창비, 2012, 115쪽)
5) 이병일, 『아흔아홉 개의 빛을 가진』, (창비, 2016, 112~1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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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인』 2021-07월(02)호 <포커스 이병일/ 신작시/ 작품론>에서
* 이병일/ 2007년『문학수첩』으로 시 부문 등단, 201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희곡 부문 당선, 시집『옆구리의 발견』『아흔아홉 개의 빛을 가진』『나무는 나무를』등
* 성현아/ 2021년 ⟪경향신문⟫ &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평론 부문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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