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장례
방수진
네가 내 안에서 파닥거리길 포기했을 때
나는 불현듯 얼굴을 잃어버렸다
눈 코 입 사라진 채 한참을 웃었지
지루하고 나약한 봄날의 삐에로처럼,
마음이란 건 어쩌면 우스워
오래된 흑백 TV처럼 잔인하지
끊어질 듯 끊기지 않고
나올 듯 보이지 않는
기대는 화면을 쉴 수 없게 하거든
거봐, 어쩌면 우리는
일상 속 너무 아름다운 절망들
마음이 죽으면
어디다 묻어야 할까
밑그림 없이 시작한 채색을
멈출 수 있을까
마음을 버렸다는 건
버려진 모국어가 되었다는 건
내 울음소리를 듣고
울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
나의 무늬와 당신의 무늬가 서로를 간섭하며 절망하는 이 세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단지 바닥에 널브러진 당신의 얼굴을 집어 내 뺨 위로 갖다 대는 것이겠지. 기억은 때때로 나에게 내 심장마저 포기하라 말하지만 난 내 두 다리를 버리고 쓴다. 과거의 나는 바보였으나 아름다운 적 있다. 당신은 바람이었으나 꽃을 피운 적 있다.
--------------
* 『시사사』 2022-봄(109)호 <이 계절의 신작시 1>에서
* 방수진/ 2007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숲으로 행진/ 김병호 (0) | 2022.05.26 |
|---|---|
| 나비 숲/ 길상호 (0) | 2022.05.26 |
| 손자/ 김남호 (0) | 2022.05.24 |
| 벽이 나를 만지기 시작했다/ 최경은 (0) | 2022.05.23 |
| 정신병원에는 구관조가 없다/ 이충재 (0) | 2022.05.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