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
이난희
채제공*의 후손이 수원화성박물관에 유물을 기증했다는 그날
우연히 집안을 정리 중이었습니다.
정리할 때마다 기준은 달라집니다.
이번엔 만약 내가 세상에 없을 때를 염두에 둔 날입니다.
사람의 때는 아무도 모르니까요.
가지고 있던 물건을 버릴 때마다 '나'는 흐릿해지고 물건의 의미는 환해지기도 합니다.
버려야 할 책을 고르다
깊은 잠에 빠진 상수리나무 잎과 마주칩니다.
안녕······ 안녕······
시간을 짚어보니 40여 년이 지났습니다
엽서를 대신했던 나뭇잎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빈집 같은 그곳에서
나의 무관심을 베개 삼아 자고 있었습니다.
나조차 기억 못 할 나의 유물이 될 뻔했죠
어느 생을 거쳐 잠시 내 것이 된 옛 서적은 전문 학자에게
개화기 인쇄물 한 점은 관계기관으로 보냈습니다
나의 마지막은
우체국이나 박물관에 가던 날의 기분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옛사랑의 편지를 전해주던 우체국과
질문 없이 유물의 말에 경청할 수 있는 박물관이
이 세계에 있어 좋습니다
아무튼 정리를 하는 날은 무엇이든
오늘 처음 알게 된 듯 자꾸 들여다보기도 합니다
-전문-
* 번암 채제공(樊巖 蔡濟恭: 1720-1799, 79세)은 조선시대 문화 중흥기를 이끈 정조대왕을 정치적으로 보필한 명재상으로 수원화성 축성 책임자이기도 했다. (2020. 10. 22. 후손들은 채제공 탄생 300주년을 맞아 유물 1854점을 수원화성박물관에 기증했다. jtbc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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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사』 2021-겨울(108)호/ <시사사 포커스 2/ 신작시> 에서
* 이난희/ 시인, 2010년『시사사』로 등단, 시집『얘얘라는 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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