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홀/ 김준현

검지 정숙자 2022. 5. 9. 02:04

 

    홀 

 

    김준현

 

 

  모래시계를 뒤집었다 한쪽이 텅 빌 때까지

  쏟아지는 모래가 혼잣말만큼 많았다 머리가 텅텅 빈

  느낌이 좋아

 

  그것은 0의 상태

  0은 인도에서 발견한 개념이다

  좋은 나라에서 발견했구나, 외계인의 비행체를

  몰랐니? 그거 수백만 광년 전의

  세상에서 왔어

  거기에는 죽은 사람들도 살지 몇 년 전에 다녀왔어

  말은 안 통하는데

  피가 통했어

 

  입술을 훔친다는 말도

  외계인이 만들었지 붉은 부위에 대한 애호

  화가 난다는 말도 그래

  그들에게 지구는 무인도였거든 어디서 불을 구해

  작은 일로도 화가 난다면

  소심한 게 아냐

  살기가 쉬운 거지

 

  어떻게든 살 사람 어떻게든 살아갈 사람

  태양이 전부인 나라를 세우자고

  굳게 다짐했지, 굳게 쉰 떡처럼 단단하게 굳게

  마음을 먹었어

  그래, 많이 먹어서 맛없지 이제

 

  모래가 다 떨어졌어

  내려가는 일이 전부였는데

  지구에서 사는 거 괜찮아? 이제 승천昇天

  발이 적당히 떠 있어도 좋아

  머리로 피가 몰려도 좋아

  뒤집어

  혁명이 아니어도 좋아

  몇 분 걸리지 않아

  사랑도 영혼도 다 좋습니다

  높은 데로 올라가면

  다시 지구로 새는 내 영혼의 일부를

  사랑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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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시』 2022-4월(388)호 <신작특집>에서

   * 김준연/ 201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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