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의 시간
류미야
호시탐탐 노리던 맹수와 맞닥뜨렸다
서가 꼭대기에서 잿빛 숨을 누르며 무구한 표정으로 틈새를 엿보던 저 야차, 활강하며 닥치는 대로 물어뜯는다 비행을 일삼는 건 야성의 오랜 습속, 때론 빛을 능멸해 어둠과 내통하고 침묵을 경배하며 활자를 헐뜯는다 방향 없는 갈피를 애써 잡아보지만 날랜 사랑의 증표로 적籍은 두지 않는다 시절을 호령하던 청동검은 깨지고 영웅의 발자국도 성곽 아래 묻혔으나 일상의 망루 위 은밀히 굽어보며 비린 생의 구석구석을 신과 함께 다닌다 최상위 이 포식자의 최대 반전이라면 누구도 예측 못할 평화주의라는 것, 낮의 아수라장 속 연민을 살지우다 무명용사 빗돌에는 눈물도 쏟고 오는, 그러나 오늘 이것을 기억하는 자는 없다
저 짐승,
먼지 아래로
사람들이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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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시인』 2022-3월(2)호 <신작시조> 에서
* 류미야/ 2015년 『유심』으로 등단, 시집『눈먼 말의 해변』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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