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빈 의자/ 정호승

검지 정숙자 2022. 5. 5. 03:08

 

    빈 의자

 

    정호승

 

 

  빈 의자는 오늘도 빈 의자다

  빈 의자는 빈 의자일 때 가장 외롭지 않다

  빈 의자는 빈 의자일 때 가끔 심장을 꺼내 햇볕에 말리고

  의자에 앉았다 간 사람들이 놓고 간 더러운 지갑도

  휴대폰도 꺼내 말린다

 

  빈 의자는 오늘도 빈 의자에 앉았다 간 낙엽을 생각한다

  빈 의자는 오늘도 빈 의자에 앉았다 간 첫눈을 생각한다

  첫눈 위에 발자국을 몇 개 찍어놓고 간 산새를 생각한다

  그 산새를 따라가며

  빈 의자에 앉았다가 울고 간 사람을 생각한다

 

  빈 의자는 비어 있기 때문에 의자다

  빈 의자는 빈 의자일 때 가장 고독하다

  빈 의자는 빈 의자일 때 가장 정의롭다

  먼데서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는 밤  

  빈 의자는 빈 의자일 때 당신을 가장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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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시인』 2022-3월(2)호 <신작시> 에서

   * 정호승/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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