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의자
정호승
빈 의자는 오늘도 빈 의자다
빈 의자는 빈 의자일 때 가장 외롭지 않다
빈 의자는 빈 의자일 때 가끔 심장을 꺼내 햇볕에 말리고
의자에 앉았다 간 사람들이 놓고 간 더러운 지갑도
휴대폰도 꺼내 말린다
빈 의자는 오늘도 빈 의자에 앉았다 간 낙엽을 생각한다
빈 의자는 오늘도 빈 의자에 앉았다 간 첫눈을 생각한다
첫눈 위에 발자국을 몇 개 찍어놓고 간 산새를 생각한다
그 산새를 따라가며
빈 의자에 앉았다가 울고 간 사람을 생각한다
빈 의자는 비어 있기 때문에 의자다
빈 의자는 빈 의자일 때 가장 고독하다
빈 의자는 빈 의자일 때 가장 정의롭다
먼데서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는 밤
빈 의자는 빈 의자일 때 당신을 가장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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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시인』 2022-3월(2)호 <신작시> 에서
* 정호승/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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