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조금씩 모르는 사람이 되어가는 중입니다/ 김밝은

검지 정숙자 2022. 4. 29. 00:05

 

    조금씩 모르는 사람이 되어가는 중입니다

 

    김밝은

 

 

  뒤에서 몰래 너를 읽을 때도 있었다고 말하지 말 걸, 샤넬 NO.5의 일부가 될 금목서꽃 향기에 기침을 하는 사람을 보면 향기를 이해하는 데도 취향이 있는 것 같다고 그냥 살짝 돌려서 말할 걸 그랬나 봐요

 

  손을 뻗으면 마음을 다 건네지 못한 혀들이 우르르 쏟아질 것만 같은 12월의 하늘은 사진으로만 오래 들여다보던 먼 이국의 소금호수 같은데

 

  바닥에 떨어진 순간 자신의 빛깔을 놓쳐버린 모과처럼 우리는 생기를 잃어가는 서로의 눈동자를 모르는 사이 밀어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반으로 쪼개져버린 마음에 손길 하나 닿지 않아 씁쓸하게 내려다보는 모과나무 아래서 무심하게 떨어뜨려버린 안부라도 떠올려야 할 것 같은데요 오늘은,

 

  내 몸에서 출렁이는 이름을 가만히 만져보면 뭉클뭉클 새파란 향기가 올라와 속절없이 몸이 기울던 날도 있었는데

 

  뭉툭해진 명치끝을 가만가만 어루만지며 멀어지지 않으려 꼭 껴안고 있던 이름을 그만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는 듯

 

  이렇게 조금씩 되덜아 걸으면서, 어제만큼 잊히는 얼굴이 되어가는 중입니다,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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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네르바』 2022-봄(85)호 <신작시>에서

   * 김밝은/ 2013년『미네르바』로 등단, 시집『술의 미학』『자작나무 숲에는 우리가 모르는 문이 있다』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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