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
안현미
스피노자는 생계를 위해 렌즈를 갈았다는데 나는 어쩌다 생계를 잃고 쑥을 뜯고 밤을 줍고 잣을 까고 은행을 모으며 밤나무의 밤은 향나무의 향은 어떻게 오는지 궁금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낮에 저주받을 것이며 밤에 저주받을 것이다 잠잘 때 저주받고 일어날 때 저주받으리라
스피노자는 생계를 위해 렌즈를 갈았다는데 나는 어쩌다 생계도 잃고 기꺼이 저주받더라도 생의 고통을 갈고 닦으며 우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지옥 속에 지옥을 사주하고 가난 속에 가난을 저주하는 자들은 누구인지 묻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전문, 『청색종이』 2021-겨울호
▶내일을 꿈꾸는 방식_(발췌)_이병국/ 시인, 문학평론가
이 시의 화자는 "어쩌다 생계를 잃고 쑥을 뜯고 밤을 줍고 잣을 까고 은행을 모으며 밤나무의 밤은 향나무의 향은 어떻게 오는지 궁금한 사람"이 되었다. "생계"를 잃었다고 표현하지만 사실 그것은 화자가 '나'가 아닌 외부 세계에 관심을 둔 까닭이다. 쑥, 밤, 잣과 은행을 다루고 밤나무의 밤과 향나무의 향이 "어떻게 오는지 궁금"해 하는 것은 인간이 맺는 세계와의 관계성을 살피고자 하는 시인의 마음이겠다. 유대 공동체에서 파문당한 스피노자처럼 외연이 없는 신을 섬기기보다는 신이 세계 내에 존재한다는 이전과는 다른 렌즈로 세계를 파악하고자 하는 태도라고 볼 수 있겠다. "낮에 저주받을 것이며 밤에 저주받을 것이다 잠잘 때 저주받고 일어날 때 저주받으리라"는 스피노자를 향한 유대 공동체의 저주는 자신들이 믿고 있는 바를 무조건적으로 따르지 않는 것에 대한 권력의 횡포인 셈이다. 강제된 자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렌즈를 연마하며 그것으로 세계를 바라보려는 스피노자의 일화는 언어를 세공하여 동시대의 문제를 직시하고 표현하며 변화를 모색하려는 시인의 실천적 수행과 맞닿아 있다. 그것은 시인에게 풍요로운 삶을 선사하지 못한다. 오히려 고통과 슬픔, 저주가 되어 시인을 결핍된 삶으로 이끈다. 그러나 이 결핍은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하고 은폐되었던 부조리를 깨닫게 하는 렌즈가 된다. (p. 시 232/ 론 23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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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딩아돌하』 2022-봄(62)호 <시계간평> 에서
* 이병국/ 인천 강화 출생, 2013년 ⟪동아일보⟫로 시 부문 & 2017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평론 부문 등단, 시집『이곳의 안녕』『내일은 어디쯤인가요』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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