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른 벼랑을 등에 지고
하나의 병상일지
방민호
1.
숨이 멎을 것 같은 한밤
산소호흡기에 몸을 맡기고 실려간다
코로나 검진 장비조차 없는 응급센터에서
추위에 덜덜 떨면서 엑스레이를, 씨티를 찍는다
격리시설도 없는 7층 병실로 끌려 올라가
젊은 의사로부터 죽을 수도 있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을 듣는다
캄캄한 새벽 이 작고 어두운 병실에세
갑자기 삶이 죽음을 향해 열린다
누운 발끝에 낭떠러지가 선다
2.
사방이 흰 벽이다
백색 처치대 위에 눕혀지자
흰 가운에 비닐천을 겹겹이 두른 남자 간호사가
바지를 벗기고 요도에 소변줄을 밀어넣는다
가쁜 숨은 금방이라도 멈출 것 같은데
산소마스크 줄 하나로 세 시간을 버틴다
코로나가 양쪽 폐를 먹어버렸다 한다
떨리는 목소리로 의사에게 묻는다
살 수 있을까요
의식을 악착같이 붙들어야 한다
정신을 잃는 순간 의사는 목에 구멍을 내고 인공호흡기를 달 것이다
8월에도 온몸이 떨리는 음압 응급실에서
삶과 죽음이 서로 부둥켜 안고 뒹군다
3.
박경리 선생이
암에 걸려 병실에 누워 혼잣말을 했지
나를 데려가시려나 보다
4.
지금은 세상에 안 계신 김홍식 선생이
네팔에 같이 가자고 하실 때 따라나설 것을
홍기돈과 다녀와서 병원에 가시니
간에까지 암세포가 번져 버리셨다 했지
떠나가신 선생의 마지막 작품은
"이기영, 그 치열한 삶과 문학적 진실의 수준"
당신을 부산 앞바다에 뿌려 달라 하셨지
내가 맡아둔 선생의 책들
아니, 내 책들도 어떻게 되는 걸까
누가 나를 어디에 뿌려야 할까
5.
음압병동 중환자실
짧은 꿈속에서
우린 옛날처럼 그 식당에 앉았고
나는 등이 비치는 까만 실크 위로
네 텅 빈 어깨를 쓰다듬는데
너는 기다려 달라고만 한다
어느 알지 못할 남자를 사랑하기 때문인지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병에 걸린
너는 옛날보다 더 말라버렸는데
겨우 꿈에서 헤어난다
고유량 산소호흡기에 매달려
가쁜 숨을 쉰다
6.
카르페 디엠
현재를 잡으라
내일이란 말은 최소한만 믿으라
호라티우스
7.
바람이 나를
티벳으로 데려간다
만 오천 리 길을
반년을 걷는다
달콤한 바람,
모래알갱이가 목을 메워도
바람, 만 오천 리 끝 머나먼 고원에서 불어오는 치명적인 바람,
바람이 부르는 대로 대륙을 가로질러
높은 산과 계곡을 터벅터벅 걸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메마른 땅으로 간다
8.
그날 밤 단 몇 시간만 늦었어도
흐린 의식 사이로 119를 떠올리지 못했다면
나는 이미 늦었을 테지
청구병원 돌아 명지병원에 열 시간이 지나서라도 실려 가지 않았다면
나는 살아날 수 없었을지 모르지
그날 의식을 잃었다면 목에 구멍을 뚫었다면 목숨은 어느 쪽으로 흘렀을까
우연히 독한 코로나에 걸려
죽을 수도 살 수도 있는 길에서
오로지 우연으로
방향을 틀었지
막다른 곳에까지 나를 끌고가
무서운 얼굴을 보여주고
다시 잠깐만
돌려보내 준 거지
9.
독방 한가운데
환자복 속에 덩그러니 누운 몸 속으로
그가 슬며시 스며 들어온다
뜨거운 허파 속에 웅크리고 앉는다
독방의 창밖에 번개가 친다
정문 쪽에서 엠블런스가 소리없이 들어온다
또 어떤 숨이 가쁜 사람이 실린 걸까
8월의 한밤이 이렇게 춥다니
떨리는 몸으로 담요 속에 웅크린다
10.
한쪽에는 삶을
한쪽에는 죽음을 채워 넣고
반은 웃고
반은 말이 없다
반반으로
조립한 레고 로봇처럼
반은 전구처럼 환하게 빛나는데
반은 그 빛을 집어 삼킨다
음압병동 중환자실에서
고유량 산소호흡기를 끼고 있는 사이에
반은 살고
반은 죽고
반은 죽고
반은 산다
반은 기쁨으로 타올라도
반은 완전히 물에 잠긴다
이제부터 영원히
반반으로 산다
11.
열하루 만에 몸을 씻는다
입고 들어온 옷을 다 버린다
온몸에 아직 독이 차 있다. 어지럽다. 기침이다. 미열이다. 걸을 수조차 없다.
세워진 비석만큼이나 가파른 바랑을 등에 지고
사는 것만 같습니다
어깨에 낙인이 찍힌 몸으로
세상을 향해
다시 한 발을 내딛는다
-전문-
▶절박한 실존적 경험에서 '본질과 시원'의 차원으로_(발췌)_이성혁/ 시인, 문학평론가
시를 발표하고자 하는데 해설을 붙여보라는 방민호 시인의 전화를 받았을 때, 그가 코로나에 걸렸다는 사실을 처음 듣게 되었다. 코로나로 며칠 입원해 있었고 죽을 뻔했다는 것이다. 목소리에 힘이 좀 없긴 했지만 여전히 밝은 느낌을 받아서 '많이 아팠나 보다'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 이후 어떤 모임에서 술을 함께 마셨을 때, 그는 여전히 밝은 모습이어서 더욱 그가 아팠다는 것에 대해 의식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시를 받아보고 나서 코로나 감염으로 그가 얼마나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숙연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부고를 받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기도 했다. 작년에 <4월> 동인이었던 금은돌 시인의 부고를 갑자기 받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강렬한 현실성으로 다가왔다. 언제 어디서 친한 문우의 죽음 소식을 듣게 될지 모르며 나 자신도 그 운명의 대상이 될지 모른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죽음은 삶 옆에 아주 가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방민호 시인은 죽음 문턱 앞에서 다시 이 삶의 세계로 돌아올 수 있었고 죽음을 마주했던 절박한 경험을 시로 쓸 수 있었다. 참 다행이다. (p. 시 162-168/ 론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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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네르바』 2021-겨울(84)호 <신작 소시집/ 신작시/ 작품론> 에서
* 방민호/ 1994년『창작과 비평』으로 문학평론 & 2001년『현대시』으로 시 부문 등단, 시집『나는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내 눈물은 바닷물속 한방울 공기도 되지 못했네』『숨은 벽』등, 비평집『비평의 도그마를 넘어』『문명의 감각』등
* 이성혁/ 2003년 ⟪대한매일신문(현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 당선, 저서 『불꽃과 트임』『불화의 상상력과 기억의 시학』『서정시와 실재』『미래의 시를 향하여』『모더니티에 대항하는 역린』『사랑은 왜 가능한가』『시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시, 사건, 역사』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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