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거울 속 한 송이 꽃 외 1편/ 한이나

검지 정숙자 2024. 4. 14. 01:07

 

    거울 속 한 송이 꽃 외 1편

 

     한이나

 

 

  누구를 닮은 것일까

  아버지의 아버지, 어머니의 어머니

  그 아득한 연결점의 누군가를 허공에서 꺼내본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한 번도 보이지 않은 사람 아버지, 거울 속 나를

  뜯어보면서

  그 누군가의 성향과 정서와 용모

  그 무엇이 그에게서 내게 전해 왔는지

  자식에서 자식 다시 자식까지

  뿌리를 내려다보며 기질까지 낱낱이

  유추해 본다

 

  내 안의 피와 살과 뼈를 준 숫자와 기호들

  살아 무성했을 말과 공허했을 몸짓들

 

  전전긍긍 여기까지 무사히 온 것만도 덕분이라고

  물결무늬 감정이 레테 강으로 도망가지 못하도록

  은총의 실마리를 찾아 간신히 바늘귀에 꿰어놓는다

 

  누구를 닮은 것일까

  어떻게'  꽃 한 송이로 피어 있을까

  나는

     -전문(p. 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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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와 재봉틀

 

 

  밤새워 재봉틀 돌리는 소리가

  미닫이문 사이

  귓바퀴에 감겨 이명처럼

  울린다 재봉의 박음질이 만들어 낸 길을

  타박타박 걷고 있다

  반평생 그 소리 듣고 있다

 

  비 오는 날 남새 텃밭도 작파하시고

  어머니 재봉틀 앞에 경 읽듯

  온 맘 온 힘을 보태 한 땀 한 땀

  삼베조각보자기 요호청 베개모 무시로 길을 만든다

  키도 살도 뼈도 조금씩 무너져 주저앉고 마는

  여자의 한 생애가

  빗소리 재봉틀 바퀴살에 실려 돌아간다

  내 꿈길에도 재봉틀 밟는 소리 들린다

 

  지구를 몇 바퀴 돌리고도 남을 어머니가 만든

  박음질 그 길

  구석진 세상 곳곳의 길 위에 나는 서 있다

  장승처럼 때로는 천불천탑처럼  

     -전문(p. 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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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선집 『알맞은 그늘이 내가 될 때』에서/ 2024. 3. 29. <서정시학> 펴냄 

 * 한이나/ 충북 청주 출생, 1994년『현대시학』에 작품 발표로 활동 시작, 시집『물빛 식탁』『플로리안 카페에서 쓴 편지』『유리 자화상』『첩첩단풍 속』『능엄경 밖으로 사흘 가출』『귀여리 시집』『가끔은 조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