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주마간산(走馬看山)/ 강우식

검지 정숙자 2024. 4. 8. 18:47

 

    주마간산走馬看山

 

     강우식

 

 

  1.

  주마간산은 세월 속의

  행운유수行雲流水처럼 흐르는

  파노라마다.

 

  어사화御賜花를 꽂지는 않았지만

  말 타고 달리며 산천경개를

  대충이라도 보고 싶지 않았겠느냐.

 

  흐르면서 지나치면서

  그냥 무심한 듯 본 산이

  무위자연으로 있어 부끄러움이 없고

 

  나그네 행색이라도 눈썰미가 있어

  산자락을 그냥 지나친 것이 아니라

  부모님 모실 묫자리로 안성맞춤으로

  점찍어 염두에 두었나니.

 

  그냥 바쁘게 무심히 본 것인데

  무욕이 되어 삭여서는

  마침내는 티를 거른 욕심이 되었다.

 

  저 산을 사서 부모님 묘로 쓰려면

  아무래도 수중에 푼돈이라도 챙겨야겠기에

  주마가편走馬加鞭하며 하루를 내딛는다.

 

  2.

  고향에는 어머니만 계신 게 아니라

  오래도록 떨어져 살은 내 짝도 있다.

  그런 정을 과거에 묻고 떠돌았다.

 

  날품팔이 같은 인생이었다.

 

  짐승도 죽을 때면

  머리를 태어난 쪽으로 눕힌다지만

  살면서 죽은 뒤의 일까지는

  심중에 터럭 끝만큼 없었다.

 

  매사가 주마간산이었다.

  그런데 늙어 죽음이 인근에 오니까

  무심히 산을 넘고

  개울을 건너며 손 하나를 씻어도

  고향을 닮은 산세와 흙냄새만으로도

  내 남루가 하염없이 젖는다.

 

  왜 그동안 그리운 것들에게

  알뜰살뜰 정 주며 살지 못했을까.

  남보다 나은 것 없으니

  흘리듯 흐르듯 그러했겠지. 

 

  그래 가자. 비록 떠돌이로 연명해 왔지만

  더부룩한 턱수염이나 밀고 가자.

  고향에는 오랜 탑돌이로 나를 가졌다는

  무릎이 닳도록 빌고 빌었다는

  탑 속의 어머니가 있다.

 

  그런데, 그런데 텅텅 빈 하늘만

  가슴을 울릴까.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의 하늘만 푸를까.

  주마간산의 말갈기에 바람만 이누나.

 

  3.

  실로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듯

  주마간산 격으로 세월아

  좀 빨리 지나가라 가라며 살아왔다.

 

  그 세월 속에 일찍 어른 티를 내며

  담배 물고 거드름 피우고 싶은

  내 유소년의 간절한 일상도 있었다.

 

  간산이라 하지만 주마여서

  새잎 돋고 꽃이 웃어도

  매사가 대충 대충 그럭저럭

  젊은 날을 소비하고 말았다.

 

  세월은 늘 가던 보폭대로 지나더라.

  그 행보를 훤히 꿰면서도

  그때는 갈지자로 헤맸는지 몰라.

  사람의 일이란 늘 아쉬움으로 남는다.

 

  주마에 만난 여자에게도

  사랑은 있더라.

  하지만 그것도 먼 산 보듯이 살았다.

 

  그러는 사이에 잎 피고 열매 맺듯이

  고향에 뿌린 자식들도 영글어

  필마를 타겠다고 다 흩어지고 말았다. 

  애비의 행적을 잇는 거 같지만 어찌하랴.

 

  주마간산이 갈 곳은 어디인가

  봄눈 녹듯 팔십 노인 눈앞에

  이제는 살아 있는 죽음만이 찌꺼기로 남아

  내일 모레 시간을 재고 있다.

     -전문-

 

  여적餘滴> 한 문장: 굳이 사자성어에 말을 붙이자면 내 첫 시집이 '사행시초'인데 이번 시집은 형식으로서 행이 아니라 四字라는 글자 자수라는 점이고 또 사행시는 四行으로 시를 만든다는 반면 成語는 말만 되었지 무엇이 될는지 모르는 것을 가지고 시를 만들었다는 의미를 띤다. 반면 고사성어는 역사에 대한 일들에서 생긴 것들이 대다수다. 같은 사자성어인데 둘은 비중이나 의미가 다르다. 그렇지만 나는 사자성어다, 고사성어로 가리지 않고 크게 보아 사자성어로 보았음을 밝혀둔다. 그런 의미에서 사자성어 시집이라 하였다. 사자성어로 특히 사자성어에는 요즘 한자가 아닌 우리말로 된 신조어도 있다. '내로남불'이나 '이부망천' 같은 사자성어는 정치권에서 나온 말이기도 하고 '마지노선'은 우리말과 외래어가 섞여서 나왔다. '낙장불입'은 화투판에서 파생된 언어, '신토불이'는 농사와 관계되어 생긴 것이다. 이렇게 사자성어라는 것은 그 시대의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재생된 면이 있다. 하지만 나로서는 주로 내가 살아오면서 익힌 한자로 된 사자성어들로 시를 만들었다. 그것이 나에게 편하기 때문이다.  

 

  책의 이름은 '강우식 사자성어 시집 주마간산'으로 했다. 별다른 의미가 없다. 내 성격이 주마간산 같아서다. 한 가지 일에 꼼꼼히 매달리기보다 매사 대충 대충 훑고 살아왔다. 단체 해외여행을 하다보면 수첩을 꺼내들고 열심히 기록하며 다니는 학구파 여행객을 만나게 된다. 나로서는 감탄, 탄 아니할 수가 없다. 그 자세나 태도가 부럽다. 그러나 내 성격상 안 된다. 하다못해 거대한 기자Giza의 피라미드 앞에서도 저렇게 거대한 토템은 어떻게 가능할까 잠시잠깐 떠올려 보는 것뿐이다. 그러면서도 그것들이 잊히지 않고 나에게서 활용되는 것도 신기하다. 장시長詩인 시집 『마추픽추』가 그러하고 『바이칼』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또 세계 여행시 시집 『백야』도 마찬가지다. 사자성어라는 것도 다 내 생활 속에 배이고 흡수된 것들인데 시가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은 것들이 시집으로 만들어지는 현실을 내 눈으로 본다. 신기하다는 느낌이 든다. 마치 내가 사자성어 같다. (p. 시 134-138/ 론 158-159)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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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주마간산走馬看山』에서/ 2024. 3. 20. <리토피아> 펴냄 

 * 강우식/ 1941년 강원도 주문진 출생, 1966년『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사행시초』(1974), 『사행시초 2』(2015)『마추픽추』(2014), 『바이칼』(2019), 『백야』(2020)『시학교수』(2021), 『죽마고우』(2022),  『소이부답』(2023) , 성균관대학교 시학교수로 정년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