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시집 · 공검 & 굴원

제18회 김삿갓문학상 심사평/ 수상자 :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23. 1. 26. 02:52

 <2022. 제18회 김삿갓문학상 심사평>

 

    칼의 언어와 허무의 힘

      - 시집 『공검 & 굴원』(2022. 미네르바)

  

  

  수상작을 선정하기 위해 먼저 역량 있는 시인, 평론가들로 구성된 추천위원들로부터 작년과 올해 나온 시집들을 추천받았다. 모두 20여 권의 훌륭한 시집들이었다. 하지만 많은 고민과 논란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정숙자 시인의 시집 공검 & 굴원을 당선작으로 선정하자는 것에 심사위원들이 모두 동의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의 시집의 시들이 가진 작품의 밀도 때문만이 아니라 그의 시에 침윤되어 있는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세상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은 자유의 정신이, 자기 성찰과 탈속을 보여주는 김삿갓의 문학 정신과 통하고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이 시집의 첫 장에 수록된 극지 은 이 시집의 서시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정숙자 시인의 시세계를 아주 잘 대변해준다. 사물과 사물, 언어와 언어의 경계를 넘어선 사유의 경지에서 시인은 고독과 허무에 마주치지만 이러한 허무와 고독을 통해 자신의 실존을 성찰하고 그것을 화석으로 만들어서라도 기록하려는 치열한 시적 정신을 이 시는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정신은 이 시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공검에서 더욱 명증한 형상화를 이루고 있다. 공검은 허무를 베어내고, 없는 것을 새겨 만드는, 쓸모없는 도구로서의 칼이다. 또한 그것은 항상 칼집 속에 갇혀 있으면서 없는 칼이기도 하다. 그것은 바로 시인의 언어이고 그 언어로 도달한 시적 정신이기도 하다. 칼집에 갇혀 붕괴되면서도 세상을 베는 칼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 치열한 허무의 힘이 바로 정숙자 시인이 도달한 시의 경지이다. 날카롭고 냉철한 사유에서 도달한 이 허무의 힘은 또 다른 표제시 굴원에서 눈물과 피의 이미지를 통해 좀 더 확장된 의미를 획득한다. 쓸모없고 허무한 언어의 칼만을 소유하고 있지만 인간 존재의 억울함과 슬픔의 눈물을 외면할 수 없어 결국 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시인의 운명을, 정숙자 시인은 우리에게 굴원의 삶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젊지 않은 나이에도 이러한 치열한 문학정신을 보여주고 있는 정숙자 시인의 노력에 경의를 표함과 동시에 시인의 놀라운 문학적 성취를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이번 김삿갓문학상 수상을 축하드린다. ▩ (p.19) 

 

  * 심사위원 : 문효치  유자효  황정산(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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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네르바2022-겨울(88)<특집_18회 김삿갓문학상 수상자>에서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공검 & 굴원』『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등, 산문집『행복음자리표』『밝은음자리표』, 제32회 동국문학상, 제9회 질마재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