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벚꽃 바다/ 박성현

검지 정숙자 2022. 4. 8. 02:03

 

    벚꽃 바다

 

    박성현

 

 

  벚꽃이 휘몰아쳤습니다 은빛 지느러미를 세우며 멀리 갔습니다 가다 말고 공중에 박혀 반짝인 날도 있었습니다 꽃잎을 떼면 그 자리에 못자국이 패었습니다 피와 기침을 뱉으면 구멍은 더 깊어졌습니다 이파리가 박혔던 자국에 벚꽃이 다시 피었습니다 이파리는 정어리처럼 뭉쳐 다니며 크게 휘어졌습니다 수면에 닿았다가 솟구쳤습니다 입 모양을 만들고는 사람들을 삼켰습니다 사람들이 벚꽃 뒤로 사라졌습니다 날씨가 고르지 못해 오한이 들었습니다 당신은 북쪽으로 향한 숲의 어디쯤에서 잠시 몸을 벗어놓겠다고 말했습니다 나도 그 어디쯤에서 이 비루하고 헐거운 몸을 놓고 싶었습니다 기침과 피가 너무도 분명해 나와 당신은 한밤중이었습니다 한밤중에도 벚꽃이 까마득했습니다 한밤중이어서 벚꽃은 크고 분명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당신 눈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이미 당신의 눈에는 희고 간결한 이파리들이 헤엄치고 있었습니다 내 겨드랑이에도 지느러미가 새로 돋았습니다 별과 목소리와 흰 바다가 뒤엉켜 몹시도 가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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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시인협회 사화집, 우리들의 얼굴 찾기 2 『너의 얼굴』에서/ 2022. 3. 22. <청색종이> 펴냄 

  * 박성현/ 200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유쾌한 회전목마의 서랍』『내가 먼저 빙하가 되겠습니다』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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