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똥 진흙창
김승종
아부지는 빨갱이들 살렸던 부정 부르주아지
한때는 민의의 대변자
군사정변 일어나자
참여 제의 물리치고
도연명陶淵明 따라 귀거래사歸去來辭 읊었지만
가끔 속옷에 낀 땀소금도 팔아야 하였지
대학 입학했던 해 여름 끝날 무렵
2학기 등록금 마련하러
쇠 두 마리 몰고 아부지와 삼십 리 길 쇠전엘 갔었네
난생처음 겪는 숱은 쇠눈
자욱한 소음에 뜬 질퍽한 진흙땅
한 쇠장수 눈웃음치며 달라붙었으나
거간꾼이 매긴 값 어림없다 하고
다시 매긴 값에도 그르다 하네
흐린 날씨 쇠똥 냄새 늘어진 해 국밥 냄새
쇠장수 길게 언성 높이다가
고무줄로 칭칭 동여맨 돈다발에 천 원 더 얹어
쇠똥 진흙창 골라 팽개치네
더는 안 되지럴 씨발 할라면 하고 말려면 말라고 그래라 씨발
사람들이 모여들어 히히 헤헤거리네
쇠똥 진흙창 처박힌 아부지
도리道理와 도락道樂이 다 무엇인가라
아들이 주먹 쥐고 나서자
꾸짖어 물러나게 하고 돈을 주워 갖다 주라네
일그러져 서 있기만 하자
허리 굽혀 쇠똥 진흙 묻은 돈다발을 주워 되돌렸네
흥정 이어져 거래가 끝났지만
그 후로도 오랫동안 흐린 날에
아부지는 쇠전엘 갔네
가서 쇠똥 진흙창에 처박혔네
-전문-
해설> 한 문장: 위 작품의 화자는 "대학 입학했던 해 여름 끝날 무렵/ 2학기 등록금 마련하러/ 쇠 두 마리 몰고 아부지와 삼십 리 길 쇠전엘 갔었"다. 화자는 "난생처음 겪는 숱한 쇠눈"과 "자욱한 소음에 뜬 질퍽한 진흙땅"인 쇠전에서 인간 시장을 실감했다. 시장이라는 장소가 철저히 이익을 추구하는 곳이기 때문에 각축을 벌이는 것은 당연하지만, 화자는 처음 맞닥뜨린 상황에 큰 충격을 받았다.
"한 쇠장수 눈웃음치며 달라붙"어 행패에 가까운 흥정을 걸어왔다. "거간꾼이 매긴 값 어림없다 하고/ 다시 매긴 값에도 그르다 하"며 제멋대로 값을 매긴 것이다. 그가 물건을 사고파는 당사자들 사이에서 흥정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거간꾼조차 무시할 수 있었던 것은 돈을 가졌기 때문이다. "길게 언성 높이다가// 고무줄로 칭칭 동여맨 돈다발에 천 원 더 얹어/ 쇠똥 진흙창 골라 팽개치"면서 "더는 안 되지럴 씨발 할라면 하고 말려면 말라고 그래라 씨발" 하고 행동한 데서 볼 수 있다. 그 모습을 본 주위 사람들은 쇠장수를 나무라지 않고 오히려 "모여들어 히히 헤헤거"렸다. 그만큼 그곳에서는 돈의 위력이 발휘되고 있었다.
화자는 그 우시장에서 "빨갱이들 살렸던 부정 부르주아지"였고, "한때는 민의의 대변자"였으며, "군사정변 일어나자/ 참여 제의 물리치고" 낙향해 "속옷에 낀 땀소금"을 파는 아버지가 "쇠똥 진흙창에 처박힌" 모습을 목격했다. 아버지의 학식이며 경력이며 명성이며 인품 등이 여지없이 무너진 현실을 본 것이다. 화자는 그 앞에서 "도리道理와 도락道樂이 다 무엇인가"라고 한탄했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길과 도를 깨달아 즐기는 일이 짓밟혔기에 절망한 것이다.
화자는 쇠장수의 행패를 용납할 수 없어 "주먹 쥐고 나"섰다. 아버지는 화자를 "꾸짖어 물러나게 하고 돈을 주워 갖다 주라"고 했다. 그렇지만 화자는 분을 삭일 수 없어 "일그러져 서 있기만" 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허리 굽혀 쇠똥 진흙 묻은 돈다발을 주워 되돌"려 주었다. 화자는 아버지의 그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고, 인정할 수도 없었다.
그렇지만 화자는 살아오면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어떻게 행하는 것이 이기는 삶인지를 깨달았다. 자식을 공부시키기 위해 소를 팔아야 하는 아버지의 심정을 자신이 아버지의 시간이 되어서야, 아버지의 얼굴이 되어서야 깨달은 것이다. 그리하여 화자는 난처한 처지에 놓인 아버지의 얼굴이 호소하는 목소리를 고개 숙이고 들었다. 가장 낮은 아버지의 얼굴에서 가장 높은 아버지의 얼굴을, 가장 힘없는 아버지의 얼굴에서 가장 강한 아버지의 얼굴을 발견한 것이다. 아울러 아버지를 닮은 자신의 얼굴을 그려 본 것이다. (p. 시 90-91/ 론 110-112) (맹문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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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푸른 피 새는 심장』에서/ 2022. 2. 20. <파란> 펴냄
* 김승종/ 1957년 경북 안동 출생, 1995년『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머리가 또 가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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