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현몽(現夢)/ 임동윤

검지 정숙자 2021. 12. 12. 23:24

 

    현몽現夢

 

    임동윤

 

 

  시간 있냐고, 점심할 수 있냐고

  책을 부치다 말고 집어 든 휴대전화에 메시지가 뜬 지 596일째 되는 초여름입니다.

 

  마지막 단편집 『단둥역』을 낸 사내가 지하에 누운 가파른 산길은 비탈길이지만 그래도 초록으로 환하고 씨 씨, 찌찌 오리나무 왁자하게 둥지를 튼 붉은머리오목눈이의 꽁지가 유난히 길어 보이는 숲길입니다

 

  무덤으로 올라가는 산비탈은 모래알 구르는 소리 정겹고, 하마터면 발길 미끄러져 발목 삘 듯한데 여자도 딸도 사위도 손자도 아무 때나 찾아오지 않는 먼 길, 뒤늦은 천국 찾아 나선 사내를 이제는 볼 수 있으려나

 

  지난봄 다 가도록 통 소식이 없던 사내가 문득 나타나 초록 산기슭으로 나를 끌고 가는 초여름 깊은 밤입니다

    -전문-

 

  시인의 에스프리> 한 문장: 그 친구는 하늘이 이어준 참 인연인가 봅니다. 2004년 여름, 첫 장편 소설집 『겨울새는 머물지 않는다』도 내 소개로 출간했기 때문입니다. 작품집 하나 없는 소설가가 무슨 작가냐고 늘 말하던 그의 소원을 내가 들어준 셈입니다. 원고를 가지고 인사동으로 오라고 해서 <문학의 전당> 대표 김충규 시인을 만나 작품집 출간을 부탁한 것이 2004년 7월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친구는 장편 소설집 『겨울새는 머물지 않는다』를 그해 9월 세상에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다음 해 세종문학나눔 우수도서로 선정돼 전국의 서점에 배포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2014년 춘천으로 귀향한 후, 그 친구와 나는 자주 만났습니다. 툭하면 전화해서 '점심 같이 할 수 있느냐?'고 물어 봤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열에 절반 정도는 거절한 것이 지금은 마음에 큰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유고 작품집 『단둥역』을 발간해준 것도 바로 나였습니다. 고교 1학년 선배인 그. 고교 때부터 백일장에 나가면 입상하던 그였지만, 그때부터 술과 담배를 좋아한 것이 그를 일찍 떠나보낸 원인이 아니었나 모르겠습니다. 삼가 친구의 명복을 빌어봅니다. (시 p. 63/ 론 108-109) (임동윤/ 저자) 

 

  * 블로그주: 최종남(1946~2019, 73세), 1975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로 소설 부문 등단, 작품집 장편소설『겨울새는 머물지 않는다』 & 단편소설『단둥역』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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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나무를 위한 변명』에서 / 2021. 11. 25. <소금북> 펴냄

 * 임동윤/ 1948년 경북 울진 출생-춘천에서 성장, 1968⟪강원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 1992년 ⟪문화일보⟫ ⟪경인일보⟫ 시조 부문 & 1996년 ⟪한국일보⟫에 시 부문 당선, 시집『연어의 말』『편자의 시간』『고요의 그늘』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