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물에 비친 나무는 깨지기 쉽습니다 외 1편/ 이혜미

검지 정숙자 2021. 12. 11. 02:44

 

    물에 비친 나무는 깨지기 쉽습니다 외 1편

 

    이혜미

 

 

  당신은 숲으로 돌아간다고 말했습니다

 

  숲으로······

 

  찢어진 나무들로 눈앞이 자욱해지고

  상처에서 옛날이 흘러나옵니다

 

  사람이 아닌 것만을 믿으며

  걸음을 잘게 나눠 디디며

 

  ······숲으로

 

  겨울을 돌아 나온 빛의 부스러기처럼

  오래도록 되풀이될 여행일 것을 알아서

  영혼은 낡고 더러운 몸을 끝내 벗지 못합니다

 

  비밀을 기록하는 뿌리의 집요함으로

  실패한 속삭임이 드넓게 자라납니다

 

  표정을 빌려줄게요

  수치를 모르는 늦여름 호수처럼

 

  어긋났던 전생을 되새길 때

  자주 들여다본 거울은 조금씩 멀어집니다

 

  숲에는 오래된 열쇠들이 꽂혀 있습니다

  땅의 문을 열기 위하여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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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진 입술과 두 개의 이야기

       진주에게

 

 

  근심어린 이름을 물고 조개는 바다를 건너간다

 

  조개는 사실 바다의 새였지

  하나라 여겼던 날개가 둘로 나뉘면

  보석인 줄도 몰랐던 비참이 눈을 뜬다

 

  두려운 날개를 무겁게 접고

  상처받은 준비가 된 몸으로

  깃털 사이 숨겨두었던 날카로움으로

 

  조금씩 숨을 얻어가는

  풍등처럼

 

  맺힌 잠시의 연결됨을 매혹이라 부른다지만

  더 큰 영롱과 황홀이

  헤어진 몸의 안쪽에 고루 발렸다

 

  풍등이 소원의 힘으로 인간의 별이 되듯이

  너에게도 타오르는 슬픔의 검불이 있어서

 

  비참함을 껴안으며 조개는 날아오르고

  단단한 마음을 심어두려

  한쪽 날개를 버려가며

  수면을 향해 몸을 열었다

 

  날개를 두고 왔다 해서 하늘을 버린 건 아니지

 

  흉 진 자리에 은근한 파문이 고여들듯

  하나의 품을 떠나보낸 조개가

  빛나는 그릇이 되어 바다를 안듯이

 

  귀한 구슬이 입으로 잠겨드니

 

  한껏 가벼워지겠지

  하나이자 둘인 몸으로 나아가겠지

 

  포옹의 넓이가 조금씩 부풀어갈 때

  뜨겁고 환한 바다의 입술이 되어

 

  벌어짐으로써 완성되는

  빛의 자리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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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빛의 자격을 얻어』에서 / 초판 1쇄 2021. 2021. 8. 24. 초판 2쇄 2021. 10.12. <문학과지성사> 펴냄 

 * 이혜미/ 1988년 경기 안양 출생, 2006년 중앙신인문학상 수상하며 시 발표 시작, 시집『보라의 바깥』『뜻밖의 바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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