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슬로시티 인증과 그 전망/ 정연덕

검지 정숙자 2021. 10. 23. 16:50

<산문>

 

    슬로시티 인증과 그 전망

 

    정연덕

 

 

  전남의 4개 군이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슬로시티(Slow City, 느림의 마을)"마을로 국제적인 인증을 받은 것은 2007년 12월 1일이다. 슬로시티 국제연맹은 이탈리아 그레베인 키안티에서 열린 총회에서 전남 완도군 청산도, 신안군 증도, 담양군 창평면, 장흥군 유치면 등을 슬로시티로 인증했다고 2007년 12월 3일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로써 아시아권에서 국제연맹이 슬로시티를 인증한 것은 우리나라가 처음이다.

  '슬로시티'란 전통 보존, 지역민 중심, 생태주의 등 이른바 느림의 철학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발전을 이끄는 도시를 뜻하는 말로 패스트푸드에 반대하여 시작된 '슬로푸드 운동'의 정신을 지역주민 전체로 확대하면서 만들어진 말이라고 한다.

  슬로시티 국제연맹은 1999년 슬로푸드 운동을 주도하던 그레베인 키안티, 포시타노, 오르비에토 브라 등 4개 도시 시장이 모여서 슬로시티 운동의 확산과 운동의 참여 도시 인증을 위해 결성되었다고 한다.

  2007년 9월 슬로시티 국제연맹 로베르토 안젤루시 회장을 비롯한 4명의 실사단이 한국에 와서 3박 4일 동안 청산도와 증도 등 신청지역 문화를 둘러보고 주민들도 만나고 돌아갔다. 회장은 "한국의 잘 보존된 전통문화와 주민들의 열정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마을을 보고난 이들은 특히 완도군 청산도의 다랑이논과 구들장논, 해녀 등 전통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점과, 신안군 증도의 재래식 천일염을 만드는 염전과 자전거를 이용한 친환경 교통 시스템이 구축된 점을 높이 샀고, 장흥군 유치면의 전통방식의 장 담그기와 생태농업 그리고 담양군 창평면 일대의 전통 돌담을 비롯하여 한과와 쌀엿 등 전통음식을 높게 평가했다고 한다.

  슬로시티 인증을 받은 국제연맹에 가입한 도시는 이탈리아 53곳, 영국 11곳, 스페인 8곳, 독일 5곳, 노르웨이 2곳, 폴란드 42곳, 포르투갈 4곳, 오스트레일리아 2곳, 뉴질랜드 1곳, 벨기에 3곳, 한국 4곳으로 11개국 97개 도시로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유일하다. 일본이 20개 도시를 무더기로 인증 신청하였으나 현장을 답사한 연맹 관계자들로부터 "너무 미국화 되어있어 전통문화 유지가 어려워 보인다."는 평가를 받아 보류 결정이 내려진 바 있다. 슬로시티 인증도시가 되려면, 인구가 5만 명을 넘지 않아야 하고, 패스트푸드를 비롯한 유전자 변형 음식을 금하고, 대체 에너지 등 환경친화 기술 개발, 마을 광장의 네온사인 제거, 전통 수공업 조리법 장려, 문화유산 지키기, 차량 통행 제한, 자전거 길 만들기, 경적 등 소음 줄이기와 나무심기, 자동판매기 포함 대형 체인점 및 대량 운송 수단도 없어야 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프랑스 폴 발레리대학 철학교수였던 피에르 상소(Pierre Sansot)는 그의 저서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에서 "느림이란 급하게 다루지 않고, 시간의 재촉에 떠밀리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에서 나오는 것이며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겠다는 확고한 의지에서 비롯하는 것"이라 하였다.  

  그는 컴퓨터와 핸드폰도 없이 살고 있다. 너 나 할 것 없이 속도전에 임하는 전사처럼 사는 현 시대에 남프랑스의 나르본에서 느리게 사는 맛을 느끼며 살고 있다 한다. 외국의 슬로시티 도시들은 생태, 환경, 먹을거리 등을 기반으로 하는 관광 벨트를 만들어 큰 성과를 거두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슬로시티는 영화에나나오는 옛 마을 같지만 이 마을에 사는 주민들의 행복지수가 높고, 건강지수도 최고 수준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요즈음처럼 대도시화, 한미 FTA 등이 영향으로 우리 농촌 산업이 수세에 몰려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슬로시티는 세계적 네트워크 가입을 통한 농어촌 지역의 국제 브랜드화, 전통과 자연 생태, 관광 상품화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보여진다.

  전남 4개 군의 인증을 계기로 경쟁력 있고 차별화된 브랜드를 육성시켜 주민소득과 웰빙 수준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한편 지역 도시 중 슬로시티에 인증 받을 만한 곳이 있는지, 차제에 속도의 가치에 지배당하는 현 시대 문제도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세계연맹 가입 도시와의 교류협정을 통해 외국 관광객 유치 등 경제적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정부와 관련 업체들의 지원은 물론 우리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우리 한 번 '느림의 미덕'을 음미해 보자. ▩ (p. 224-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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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문집 『새벽은 밝고 상서롭다』에서/ 2021. 8. 15. <정문사> 펴냄

  * 정연덕/ 1942년 충북 충주 출생, 1976년『시문학』추천 완료(1976.3.~77.1.)로 등단, 시집 『달래江』『흘러가는 산』『고욤나무 풍장에 들다』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