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자르며
김미연
긴 머리카락이 잘려나간다
그믐달처럼 어두운 과거의 시간들이 사라지고 있다
가벼운 한마디에 베어
홀로 벽에 기대어 울었던 기억
낡은 달력이 뒤에 오는 새 달력처럼
시간이 시간을 낳는 사이
지금도 나는 묵은 일기장 겉표지처럼 낡아간다
내용이 뭉개져 버린 책처럼
잊기 위해 살고
잊히지 않으려 살아가는 사람들
나는 어느 쪽일까
긴 머리는 어느새 짧게 변해 있다
잘라내도 부질없는 일
고통은 뿌리가 깊어 쉼 없이 자란다
또 어느 길목에서 만나게 될 어둠이여
다시 자란 아픔으로 이곳을 찾으리라
어깨를 타고 흘러내리는
어제의 시간이 한 줌 발등으로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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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문예』 2021-봄(92)호 <신작시>에서
* 김미연/ 2010년『시문학』으로 시 & 2015년『월간문학』으로 문학평론 & 2018년『월간문학』으로 시조 부문 등단, 시집『절반의 목요일』, 평론집『이미지와 서정의 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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