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머리를 자르며/ 김미연

검지 정숙자 2021. 7. 15. 03:54

 

    머리를 자르며

 

    김미연

 

 

  긴 머리카락이 잘려나간다

  그믐달처럼 어두운 과거의 시간들이 사라지고 있다

 

  가벼운 한마디에 베어

  홀로 벽에 기대어 울었던 기억

 

  낡은 달력이 뒤에 오는 새 달력처럼

  시간이 시간을 낳는 사이

  지금도 나는 묵은 일기장 겉표지처럼 낡아간다

 

  내용이 뭉개져 버린 책처럼

  잊기 위해 살고

  잊히지 않으려 살아가는 사람들

  나는 어느 쪽일까

 

  긴 머리는 어느새 짧게 변해 있다

  잘라내도 부질없는 일

  고통은 뿌리가 깊어 쉼 없이 자란다

 

  또 어느 길목에서 만나게 될 어둠이여

  다시 자란 아픔으로 이곳을 찾으리라

 

  어깨를 타고 흘러내리는

  어제의 시간이 한 줌 발등으로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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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교문예』 2021-봄(92)호 <신작시>에서

  * 김미연/ 2010년『시문학』으로 시 & 2015년『월간문학』으로 문학평론 & 2018년『월간문학』으로 시조 부문 등단, 시집『절반의 목요일』, 평론집『이미지와 서정의 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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