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의 안감
정선희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설익어 목소리가 갈라지는 울음이 있고, 색을 덧발라 속이 안 보이는 울음이 있고, 물기가 가득해서 수채화처럼 번지는 울음이 있다는 것을
어른이 우는 모습을 본 아이는 속으로 자란다
그날 호주머니의 구멍 난 안감처럼
울음은 움켜쥔 손아귀에서 허무하다는 걸 알아버린다
그 후 내가 만난 모든 울음은
그날 밤에 바느질된 듯 흐느끼며 이어져 있다
실밥을 당기면 주르륵 쏟아질 그 날의 목록들
외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다섯 여자가 모여 앉아
울음 같은 모닥불에 사연 하나씩 쬐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모두에게 다른 사람, 몰랐던 사람이었다
관계란 아름답지 않은 한 줄 문장 같은 것을 붙잡고 있는 것
울음은 죽은 이에게 가지 않고 자신을 적시다 얼룩질 텐데
죽음을 당겨 울음의 안감으로 쓰는 거라 이해했다
그날 가장 서럽게 흐느끼던 어머니를 보며
나의 습습해진 어딘가를 쓸어본다
-전문-
◈ 세 번째 아이를 기다리며 부르는 노래 -정선희 『아직 자라지 않은 아이가 많았다』 (발췌)_신상조/ 문학평론가
엄마를 따라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에 간 아이는 그날 "너무 일찍" 알아버린 것들, "너무 일찍" 이해해버린 것들이 있다. 그것은 울음의 색깔로 드러나는 망자에 대한 애도의 성격이다. 설익은 울음과 속을 알 수 없는 울음이 건조한 슬픔을 드러낸다면, 슬픔이 넘쳐나서 주위 사람들까지 따라 울게 만드는 울음이 애도의 성격을 구별 짓는다.
하지만 '아이'가 보기에 망자에 대한 이 모든 애도의 울음은 "죽은 이에게 가지 않고 자신을 적시"는 "얼룩"이다. 이는 사랑하는 이를 상실한 이의 정서적 반응이 건강한 애도의 과정을 거쳐 치유로 진행되지 못한 채 상흔으로 남거나, 자아의 상실로 변형되어 고착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애도란 "호주머니의 구멍 난 안감"처럼 만지면 만질수록 허무하고 불편한 자기만족일 따름이다. 여기에 더해 자신의 어머니를 비롯해서 망자를 중심으로 모인 피붙이들이 "아름답지 않은 한 줄 문장 같은 것을 붙잡고 있는" 관계에 불과하다는 아이의 인식은, 우리를 속이고 우리 또한 기만하기 일쑤인 기억에 대한 자각이기도 하다. 왜곡된 기억을 매개로 한 관계에 관한 이 같은 자각은, 결국 망자를 애도하는 울음이 대변하는 것이 실은 '산 자의 삶'일 뿐이라는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화자가 겪었던 외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의 경험은 타인을 통해 인간의 보편성을 정립하는 '직관'에 가깝다. 무릇 인간이 타자 속에서 종국적으로는 자신에 대한 앎과 발전을 이루어나가는 존재라고 할 때, 어린 화자의 직관은 내적 사유에 몰입하는 일종의 트라우마로 작용했으리라. 그러므로 어린 시절에 일어난 일들은 오래된 미래로서 언제나 현재상황이다. (p. 시 389-390/ 론 390-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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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상조_문학평론집 『붉은 화행』에서/ 2021. 5. 29. <상상인> 펴냄
* 신상조/ 2011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사 평론 부문 등단, 계명대학교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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