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와
정숙자
아침 햇살 비쳐드는 가을 숲길입니다. 저는 이오와 함께 산책
을 합니다. 낙엽이 밟힙니다. 주위엔 키 큰 나무들이 즐비합니
다. 어린 이오*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꼬리를 흔들며 좋아합니
다. 낙엽도 고운 까닭에 밟지 않으려 하지만 피해 디딜 수 없을
만큼 많이 떨어져 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며 생각합니
다. <제아무리 높은 나무의 잎새일지라도 떨어지면 밟힌다,
개도 밟는다>라고요. 누구의 경우라도 추락되지 않을 인격을
지니는 것만이 최고의 영예, 명예입니다. 인간이라는 허물을
입은 까닭에 노상 어려운 삶이지만 올곧게 걸어야 하는… 그
런저런 생각에 잠기는 동안 산책로의 끝에 먼저 간 이오가 저를
기다리며 꼬리를 흔듭니다. 난제인지 희제인지 모를 오늘이 거
기 함께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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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이 화려한 침묵』에서/ 1993. 4. 26. <명문당> 발행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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