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史記꾼
김희준(1994-2020, 26세)
팔지 않겠습니다
은퇴한 별이 너머에서 잠들고 몇 세기 밤이 광물로 굳어졌다네 이런 밤엔 무엇도 되고 싶지 않네 먹에 끼인 구름을 피해서 계절은 도래하더군 벼루를 껍질 삼았다는 말일세 적어도 글 같은 모양새로 걷지 않겠나 발가락으로 글이 써진다면 그까짓 변신이 두렵겠나
토막 난 성기는 폐허와 같아 거세된 문장이 동굴을 밝히면 나는 어둠이 된다네 어둠은 그대로 검정이어서 어떤 걸 넣어도 좋다네 캄캄하게 물드는 것이 손뿐이겠나 헤집은 곳마다 내가 튀어나오더군 가끔은 피카이아가 잡히기도 했지 그럴 땐 그것이 고전적 유물론자인지 고대의 투명한 저녁인지 알 길이 없었다네
아무렴, 나는 팔지 않을 작정이네 동굴에는 척추로 생을 쓰는 내가 있었을 뿐이네 실존을 부끄러워하는 까닭은 어둠을 읽어내지 못한다는 말일세 여기 모두 맹인이 되었다는 뜻이네
부딪히는 시대에 등이 부서졌네 틈으로 누가 나와도 놀라지 말게 공孔의 제자일 테니 벽화에 붙은 붓을 보게나 남아서 기록이 된 것인지 살아서 내가 된 것인지 학설로 여기기엔 애처로운 등을 가졌지 뭔가,
천장을 볼 수 없는 이유를 후생에서 찾기로 하지 이를테면 달의 척삭을 밟고 너머를 봤다든가 유배당한 별이 잠드는 방향에 대해서 말이네
두루마리 서에 접힌 내가 어떤 것도 팔지 않을 때 어둠은 정설로 남았으면 하네
-전문-
시와사람 특별기획/ ★ 김희준 시인을 기억하다
경상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 재학 중이던 김희준 시인(26세)은 지난 7월 24일 새벽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시인의 49재 되는 날이자 시인이 살았으면 26번째 생일이었을 9월 10일, 그의 첫 시집이자 유고시집이 나와 젊은 시인을 안타까워하는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공부를 이어가기 위해 대학원(현대문학 전공)에 진학하였고, 최근에는 학위 논문을 준비하던 중이었습니다. 시인은 23살이던 2017년 『시인동네』로 등단하여 2017년 계간 『시산맥』의 제2회 "시여, 눈을 감아라>에서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출처] 고 김희준 시인 첫 시집이자 유고 시집 출간|작성자 경상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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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 『시와사람』 2020-겨울호 <시와사람 특별기획_김희준 시인을 기억하다> 에서
* 김희준/ 1994년 경남 통영 출생, 경상대 국문과 졸업, 동대학원을 다녔다, 2017년 『시인동네』로 등단, 2020. 7. 24. 불의의 사고로 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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