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오픈 레터의 우정을 간직하며
-류미야 시인께
정숙자
어느 날 제가 어느 시인으로부터 이렇게나 따뜻한 공개편지를 받게 되리라고는 상상의 확장 속에서도 그려보지 못한 일입니다. 이 편지를 읽는 내내 수평선 저 너머로, 아니 지평선 저 밖으로 밀려갔던 시간들이 깊이깊이 가라앉은 저의 의식을 흔들며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발표하고, 또 책으로 묶어 묶어내기도 했던 혈흔들이 파도가 쓰러질 때마다 함께 쓰러지고, 일어설 때마다 다시 일어서며 철썩철썩 시야를 적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의, 어쩌면 난자卵子일 때부터 읽고 있었을지 모르는 제 몫의 하늘과 그늘의 중량을 새삼스레 헤아려보게 됐던 셈이지요. 이런 ‘헤아림’은 계획성 없이 저절로 일어나는 파동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 동력은 곧바로 우의가 부여한 온정일 것입니다.
제가 류미야 시인께 시선이 닿은 첫 번째 원인은 뜨끔뜨끔 지면에서 만나는 작품 때문이었습니다. 시조時調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현대적 감각과 표현들이 무척이나 반갑고, 참신하게 다가왔습니다. 특히 시조에서 ‘현대적 감각과 표현’이란 시대의 흐름이자 요구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익히 보아오던 어휘군과 감성/정서만으로는 뭔가 허전한 느낌을 받고 있던 차에 류미야 시인의 시조-시는 발견의 즐거움을 안겨주었습니다. 예술의 궁극이 ‘새로움’이라는 걸 고려할 때 그건 굉장한 광선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 안에선 ‘맞아! 맞아! 시조도 이제 이 정도의 탈주선을 노櫓 저어야 돼’라고, 잘 알지도 못하는 시조 분야를 혼자 점치며, 장차의 류미야 시인의 문학세계를 멀리- 널리- 바라다보기도 했습니다.
일례로 「종이무사」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제목에서부터 푹 찔릴 수밖에 없지 않았겠어요? 첫 연이 이렇습니다. “부주의한 손놀림이 끝내 피를 불렀다” 그리고 5연에 이르면,
칼을 벼린 일도양단은 날카로워 위험하고
칼을 버린 언어도단은 날것이라 위태하다
이 예리한 언어의 감각은 각고의 노력이 아니면 습득할 수 없는 인식이자 테크닉(technique)일 테지요. “일도양단”과 “언어도단”이라는 애너그램(anagram) 혹은 펀(pun)으로도 읽힐 수 있는 여유에 저는 기꺼이 허虛를 찔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한 줄의 독창성獨創性을 위하여 ‘종이’라는 사물을 두고 ‘무사’와 한판 벌이는, 일합一合의 현장이 역력합니다. 피! 그것보다 진한 잉크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보다 화려한 각축이 어디에 고이겠습니까.
우리의 영혼은 벼루이며, 우리의 마음은 먹墨이며, 우리의 의지란 두세 뼘 길이의 붓이 아닐까요. 그래서 우리는 고통과 악몽도 묵묵히 견디고, 견딜 뿐만 아니라 징검돌 삼아 시퍼런 삶을 건너는 존재가 아닐까요. 아차, 제 이야기가 엉뚱한 방향으로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 글이 회답이라는 걸 잊고 말이죠(ㅎㅎ).
급-선회하겠습니다. 류미야 시인께서 제게 주신 오늘의 오픈 레터(open letter)는 또 다른, 많은 분들한테도 깊은 위로와 격려가 될 것입니다. 어느 사회든 절벽 위의 문인목文人木은 서 있기 마련이고, 각인된 몇 마디의 햇살은 오랜 세월 맺힌 이슬을 빛내 줄 테니까요. 이제 2021년 신축년辛丑年 새해입니다. 올해에는 더욱 건강하시고, 가정과 웹진 월간 『공정한시인의사회』에도 큰 행운이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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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을 사랑하는 ⟪문학의 집 · 서울⟫ 소식지 제231호 2021년 1월 「문학인이 띄우는 편지 186」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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