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시인의 시

눈/ 이승훈

검지 정숙자 2020. 12. 27. 02:27

 

 

    눈

 

    이승훈(1942-2018, 76세)

 

 

  흰 팔들의 여인이 온다

  먼 앞 바다에 낮이 와서 머문다

  불모不毛의 나날이 깨어나고

  안에는 울음처럼 눈 뜨는 가을이 부딪친다

  거울을 손에 든 

  여인들 속에서 아직 말하여지지 아니한

  말들이 흘러나오고

  부드러운 먼 앞바다에서 낮처럼 설레이는 나

  내부內部에는 따스한 이유理由들이 바람 불고

  잃은 눈들이 조용히 다가온다

  보라,

  마지막 잎들이 시간을 딛고

  어느 발이 끊임없이 달려가고 있다

  눈물보다 더욱 푸르게 넘치는 외정外廷에서

  내가 본 먼 앞 바다에서

  이윽고 흰 팔들의 여인이 온다.

     -전문-

 

 

  * 이승훈(李昇薰 1942.11.8.~2018.1.16.)/ 강원 춘천 출생. 1963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및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연세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초기 시들은 언어 자체를 대상화하는 작업에 집중하여 개념화를 거부하는 시세계를 주로 보여주었다. 시집 『사물들』 『당신의 초상』 『당신의 방』 등이 있고, 평론집으로는 『이상 시 연구』 『반인간』 『시론』 등이 있다. 춘천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1970-1980),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1980-2008)를 역임하였으며 다수의 시론집과 산문집이 있다. 현대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이상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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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네르바』 2018-겨울호 <이 계절의 시>에서 (사진/글 : 김경성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