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라는 마법으로
탁인석/ 수필가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황제가 되기까지 극적인 여러 스토리는 문학 작품이나 영화의 소재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 스토리는 매번 접해도 또한 흥미롭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옥타비아누스로 불렸던 19세에 이미 줄리어스 시저로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카이사르의 눈에 들어 유언장에 후계자로 지목된다. 카이사르가 부르터스에게 암살당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유언장에 명시한 것이다. 이미 후계자로 소문났던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의 연인으로 유명한 안토니우스와의 많은 경쟁 스토리는 역사에 관심 가진 이들에게 널리 회자되어 왔다. 젊은 옥타비아누스는 훗날 로마를 장악하고 제정 로마 시대를 여는 초대 황제가 되어 세상에서 가장 존엄한 자를 뜻하는 아우구스투스를 부여받는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천부적 능력이나 정치적 행운이 작용한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지만 여기에서 눈여겨볼 것은 당시 천재 시인 베르길리우스(BC70년~BC19년)와의 만남이다.
당시 로마 최고의 시인인 베르길리우스는 북이탈리아 출신으로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로마 통일과 전성기에 그 또한 궁중시인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친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로마제국의 근거를 시인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영감을 받고 그걸 통치 전략에도 이용하는 본능적 정치적 감각이 뛰어났다. 베르길리우스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직접 권고로 로마제국의 운명적 탄생을 하늘의 뜻으로 하는 야심적인 서사시를 기획한다.
로마의 시성으로 불릴 만큼 뛰어난 시인은 이후 전 유럽에서 추앙받는 시인으로 단테가 저승의 안내자로 그를 선정할 만큼 위대한 시인 베르길리우스였다.
그는 BC30년경 로마의 국민 서사시 「아이네아스」라는 미완성 걸작을 쓴 시인이다. 베르길리우스는 정계 데뷔를 포기하고 젊은 문학가들과 잦은 교류를 통해 철학과 문학에 정진한 결과 시인으로서 크게 이름을 떨치고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인정을 받아 일생 동안 황제의 측근 시인으로 활동하였다. 「아이네아스」는 그가 병으로 죽기 전 11년에 걸쳐 창작한 작품인데 완성작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시는 세계 문학 사상 명편 서사시 중 하나이며, 호메로스 서사시의 구조를 바탕에 깐, 특정 문제를 풀어 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이네아스」를 이해하려면 호메로스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호메로스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서사시 「알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서양 문학의 최초이자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기원전 8세기경에 구전으로 성립되고, 기원전 6세기경에 문자로 기록되었다고 추정되므로 지금으로부터 무려 수천 년 전의 작품이지만, 이 작품들이 지닌 감동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줄어들지 않는다. 물론 단순히 오래 되었다는 사실 하나에만 경탄이 집중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토록 오래된 작품이 그토록 짜임새 있는 구조와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경탄을 자아내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가 트로이아 전쟁까지를 담고 있다면 「아이네아스」는 토로이아 전쟁 이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기원전 12세기에 트로이아가 그리스인들에 의해 함락당한 후 트로이아보다 위대한 제2의 트로이아를 건설하리라는 신탁 이후 그리스 신화 속의 아프로디테 베누스의 아들 아이네아스는 가족과 추종자들을 대동하고 패전의 그림자가 짙은 조국을 떠난다.
풀어서 말하자면 트로이군 쪽 중요 인사 중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 아이네아스는 오디세우스처럼 귀향길에 나섰다고 볼 수 있다. 트로이를 세운 선조가 이탈리아에 살던 사람이었으므로, 다시 이탈리아로 가서 로마를 건국하려는 아이네아스도 확대 해석하면 귀향에 나섰다고 볼 수 있다. 귀향길에서 헥토르 미망인인 안드로마케가 어느 그리스 대장군의 아내가 되었고, 그 대장군의 아들을 낳아. 대장군이 죽자 아들 대신 어떤 도시국가를 설정하고 있었는데 그 도시에 아이네아스 일행이 도착하여 환대를 받았다는 이야기라든지, 오디세우스가 저승에 가서 죽은 어머니를 만나고 예언자 테레시아스를 만나 귀향의 방도를 묻듯, 아이네아스도 하데스에 가서 아버지 앙키세스를 만나 앞으로 무엇을 하고 무엇을 안 해야 하는지를 묻는 장면이 나온다. 한마디로 「오디세이아」를 로마식으로 쓴 「아이네아스」라고 볼 수 있다.
「아이네아스」의 작품적 걸출함은 로마의 미래에 대한 숭고한 전망과 찬미를 넘어 한 나라의 통치 기구가 갖는 목표와 그 성취를 한 인간의 좌절과 인간적 고뇌를 통해 뽑아 올린다는 점이다. 여기에 이르러 로마는 한 도시의 이름이 아니라 인류가 찾아내고 찾아가는 이상향적 제국의 중심이 된다. 또 하나 그리스 로마 신화의 특징은 탁월한 작가가 이들 이야기의 중심에 존재한다는 공통성이다. 문학은 작가에 의해 작품적 위대함이 탄생된다. 트로이전쟁을 신화로 재가공하여 여기에 등장한 인물이 그리스 아프로디테의 아들 아이네아스다. 신탁을 빌려 아이네아스 자손들이 트로이를 지배할 운명이고새로운 땅 트로이를 건설하는 것으로 설정한다. 그래서 카이사르는 신이고 아우구스투스는 신의 아들이며 지엄한 신의 명령을 받은 존재로 로마 건설은 신의 뜻이라는 결론에 도달시키는 설득을 갖게 된다. 베르길리우스 서사시를 독서하면 작품 속의 예언이 실현된다는 생각이 들 만큼 독자는 문학의 마법에 깊숙이 빠져든다. 문학은 허구의 작업이자만 이처럼 세계사 속의 인류를 새롭게 창조하는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이것이 문학이 목표한 진실의 세계인 것은 물론이다.
블링크에 기대면 사람들은 순차적인 합리성을 넘어 제1감이라고도 하는 단 2초 간의 짧은 느낌에서 의미를 찾고 무언가를 결정한다고 한다. 이리 보면 인간의 마음은 팩트가 아니라 정서적 지지 세력에 더 많은 영향을 받기 떄문인지 모른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활동의 어려움이 겹치는 계절의 변화를 바라보다 문학의 마법에 휘감기고 말았다. (p. 226-2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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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문학』 2020-8월호 <수필>에서
* 탁인석/ 1992년 『수필과비평』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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