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 들어야 하는 나이가 되어
박두규
이승에 나와 이름 석 자를 얻었어도 눈이 어두워 짐승의 길을 걷고 있던 중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는 그 깊이를 가늠하고 싶은 생각이 든 것은 겨우 숲에 들어야 하는 나이가 되어서였다 하지만 몸 안의 세상과 몸 밖의 세상을 그토록 헤매었어도 길은 보이지 않고 눈은 밝아지지 않았는데 살면서 세상의 선인善人들을 읽고 만나면서 나의 탁한 숨은 차분해지고 고요의 흐름을 탈 수 있게 되었다 그 어느 무렵부터 수직으로 깊어지는 가녀린 물줄기 소리가 간간이 들리더니 이제야 겨우 숲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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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2020-봄호 <시에 시> 에서
* 박두규/ 전북 임실 출생, 1985년『남민시南民詩』, 1992년『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사과꽃 편지』『두텁나루숲, 그대』, 산문집『生을 버티게 하는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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