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작별의 귀의처 1 외 1편/ 김청수

검지 정숙자 2020. 2. 29. 15:59



    작별의 귀의처 1 외 1편


    김청수



  동서남북, 공사판 일자리 찾아 돌아다닌 지

  삼십 년이 넘었다던 문곡 시인

  담배와 막걸리 보약으로 알고 밤낮으로 챙겨 먹던……

  어느 날부터 기침도 잦고 몸도 옛날 같지 않아

  평생을 병원이라곤 모르던 노가다 십장이

  건강검진 받는다고 병원 가서

  의사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는다


  폐암 말기로

  간으로 어깨로 세포가 전이되어

  수술할 수도 없는

  삼 개월 시한부 인생

  CT와 MRI 찍는다고 며칠 사이에

  사진값이 천만 원이나 들었다고 전화가 왔다


  한때는 안동에서 사과 농사를 짓고

  잘나가던 시절에는 선거에 발을 담갔다가

  몇 번 고배를 마시고

  빈털터리로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죽을 둥 살 둥 노가다판에서 잔뼈가 굵은

  아플 짬도 없이 평생을 바쁘게 살다

  노가다판 지하 터널에서

  콧구멍으로 들이마신 돌가루만 해도

  몇 포대는 될 기라

  지금까지 살아온 것만도 고마운 기라

  참 오래 살았다 지금 죽어도 후회는 없다고

  보약을 삼키듯이 쓴웃음으로 나를 위로한다


  죽는 날까지 산속에 들어가 맑은 공기나 마시다가

  그날이 오면 가야지

  그나저나 범관 자네가 나를 문단에 끌고 다녔으니

  뒷정리는 알아서 하게!

  나도 모르는 문학을 내게 던져놓고 떠난다고 했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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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별의 귀의처 2



  상현달이 뜨는 초저녁 전갈을 넣었다


  지구별에서 충전된 배터리가 방전 직전이다

  시한부의 인생 희미한 불빛 아래서

  문학은 내게 던져놓고 떠난다고 했다


  가을, 단풍이 입고 있던 붉은 옷을 벗어던질 때

  등이 시린 겨울의 길목

  구천 길을 달리다가, 꿈길 속을 걸어가듯

  따뜻했던 심장은 조금씩 차가워지고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쯤 가쁜 숨결은 들어 보지도 못하고

  영혼은 이미 강을 건너고 있었다


  차가워진 심장을

  반야용선에 싣고 밤새,

  눈물의 바다에서 노를 저었다


   흰 두루마기 걸친 만담꾼이

  아지랑이 같은 이야기를 하나

  나에게 던져놓고 손을 흔든다

  가슴에 상현달 다시 떠오르면

  새벽길 달려서 온다고 했다


  사과나무 사랑했던 사람, 하늘에 사과나무를 심고

  밤하늘 별이 되어 별빛으로 반짝거린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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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2020-봄호 <시에 시> 에서

김청수/ 경북 고령 출생, 2005년, 시집『개실마을에 눈이 오면』으로 등단, 시집『차 한 잔 하실래요』『바람과 달과 고분들』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