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파일에 비
- 여순 71주년
남길순
오늘은 부처님 떠내려간 날이란다
할머니는 해마다 같은 말을 하신다
저 바위 앞에 한 여자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지
손이 발이 되도록 자식을 살려 달라고 빌었다
바위 속엔 부처가 있고, 여자는 비를 흠뻑 맞으며 독개구리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지
바위와 여자가 둥둥 떠내려가던 날
천지에 사람이 울고 개구리들이 울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다시 부처님이 오셨구나
얘들아 손 깨끗이 씻그라이
비 그치면 거짓말처럼 앞산 무덤들이 눈썹까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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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파란』 2019-가을호 <poem/ 신작> 에서
* 남길순/ 2012년 『시로 여는 세상』으로 등단, 시집 『분홍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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