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초파일에 비/ 남길순

검지 정숙자 2020. 2. 18. 16:54



    초파일에 비

    - 여순 71주년


    남길순



  오늘은 부처님 떠내려간 날이란다 


  할머니는 해마다 같은 말을 하신다


  저 바위 앞에 한 여자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지


  손이 발이 되도록 자식을 살려 달라고 빌었다


  바위 속엔 부처가 있고, 여자는 비를 흠뻑 맞으며 독개구리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지


  바위와 여자가 둥둥 떠내려가던 날


  천지에 사람이 울고 개구리들이 울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다시 부처님이 오셨구나


  얘들아 손 깨끗이 씻그라이


  비 그치면 거짓말처럼 앞산 무덤들이 눈썹까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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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 파란』 2019-가을호 <poem/ 신작> 에서

   * 남길순/ 2012년 『시로 여는 세상』으로 등단, 시집 『분홍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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