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시인의 시

원볼낫싱/ 황병승

검지 정숙자 2019. 7. 26. 17:40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원볼낫싱

 

    황병승(1970-2019, 49세)

 

 

  흰색-검은색-초록으로 가는 은밀한 순서 울게 만드는 것을 나는 증명할 것이다

 

  여섯시에 병들고 아홉시에 죽고 열두시에 다시 태어나는 굴레

 

  한 소년이 출로변에 누워 기역자로 죽어간다

 

  밤이다,

 

  꽃술이 달린 소녀의 머리띠가 호수의 수면 위로 떠오를 때

 

  하얗게 눈이 멀고,

 

  진창을 지나 아홉시.

 

  흰색-검은색-초록으로 가는 굴레 울게 만드는 것,

 

  하늘에서 짠물이 쏟아지면, 호숫가의 누이도 젖고 아버지도 기차도 젖고

  숨소리조차 젖을 텐데…… 들어라 이 엄마의 마지막 잔소리, 검둥아

  씻어라 깨끗이 씻고 넘어가라

 

  들판을 지나 열두시.

 

  초록 물이 검은 언덕을 타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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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여장남자 시코쿠』에서/ 2005.6.30 초판 1쇄, 2008.10.27 초판 6쇄 <랜덤하우스코리아(주)> 발행

  * 황병승/ 서울 출생, 2003년『파라21』신인문학상 시 부문에 「주치의 h」외 5편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