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시인의 시

까마귀 외 1편/ 구상

검지 정숙자 2019. 7. 21. 17:02

 

 

    까마귀 외 1편

 

    구상(1919-2004, 85세)

 

 

  나는 비탈산, 거친 들판을 헤매면서

  썩은 고기와 죽은 벌레로 배를 채우며

  종신서원終身誓願의 고행수도苦行修道를 하는 새다.

 

  까옥 까옥 까옥 까옥

 

  너희는, 영혼의 갈구渴求와 체읍涕泣으로

  영영 잠겨 버린 나의 목소리가

  불길을 몰아온다고 오해하지 마라

  오직 나는 영통靈通한 내 심안心眼에 비친

  너희의 불의不義가 빚어내는 재앙을

  미리 알리고 일깨워 줄 따름이다.

 

  까옥 까옥 까옥 까옥

 

  - 오늘도 나는 북악北岳 허리 고목古木 가지에 앉아

  너희의 눈 뒤집힌 세상살이를 굽어보며

  저 요르단 강변 세례자 요한의

  그 예지豫智와 진노震怒를 빌려서 우짖노니

 

  _ 이 독사의 무리들아 회개하라!

  하느님의 때가 가까이 왔다.

  속옷 두 벌을 가진 자는 한 벌을 헐벗은 사람에게 주고

  먹을 것이 넉넉한 사람은 굶주린 이와 나누어 먹고

  권세가 있는 사람은 약한 백성을 협박하거나, 속임수를 쓰지 말 것이요

  나라의 세금은 헐하고 공정하게 매겨야 하며

  거둬들임에 있어도 부정不正이 없어야 하느니라.

 

  까옥 까옥 까옥 까옥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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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 16

 

 

  강은 과거에 이어져 있으면서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강은 오늘을 살면서

  미래를 산다.

 

  강은 헤아릴 수 없는 집합이면서

  단일과 평등을 유지한다.

 

  강은 스스로를 거울같이 비워서

  모든 것의 제 모습을 비춘다.

 

  강은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가장 낮은 자리를 택한다.

 

  강은 그 어떤 폭력이나 굴욕에도

  무저항으로 임하지만

  결코 자기를 잃지 않는다.

 

  강은 스스로가 스스로를 다스려서

  어떤 구속에도 자유롭다.

 

  강은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면서

  무상 속의 영원을 보여준다.

 

  강은 날마다 판토마임으로

  나에게 여러 가지를 가르친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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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문학』 2019-7월호 <기획특집|구상 시인 탄생 100주년 기념_대표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