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시집 · 열매보다 강한 잎

불시착/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0. 9. 28. 23:52

 

    불시착

 

    정숙자



  뭉쳐진 의미가 고층에서 떨어진다

  짐승들은 죽어서 먹히지만 인간은 먹혀서 죽는다

  꿈을 감싼 비늘, 의지를 품었던 피와 살이 뜯겨져나간다

  더 이상 먹힐 게 없어졌을 때

  바람은 그를 벼랑으로 밀어버린다

  반짝! 거품이 꺼진다

  자살은 결국 타살이다

  몇몇 범인을 지목할 수 없다

  온 세상이 합세했으므로 한 목숨 나누어 먹었으므로 세

상은 더욱 활기를 띨 뿐        

  ―그는 의지가 약했다

  ―그는 치밀하지 못했다

  ―그는 융통성 없는 인간이었다

  손에손에 망치를 들고 죽은 이를 못 박는다

  더러 애도하는 이도 있지만 주검에겐 위로가 되지 않는다       

  크릴은 고래에게 고래는 작살에 먹히는 바다

  온갖 혈액 뒤섞인 바다                           

  태양을 바수는 파도 속에서 아가미만 뻐끔거리는 그림자

는 죽음 너머를 살고 있다

  모든 자살은 순교다

  진짜로는 아무도 자살하지 않는다

     -애지2003.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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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열매보다 강한 잎』에서/ 2006.9.25. <(주)천년의시작>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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