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시집 · 열매보다 강한 잎

이브 만들기/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0. 9. 28. 00:43

 

     이브 만들기

 

     정숙자

                                                         

                                                         

  갈비뼈 하나 바치지 않고 자신의 창세기 열 수 있는 사람

아무도 없다

  피 묻히지 않고 갈비뼈 하나 주무를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우리는 진흙이 아닌 바람으로 맺힌 이슬들

  꽃을 버려야만 씨앗이 여무는 풀들

  외투만으론 추위를 막을 수 없다

  이브를 안아야 한다, ―하지만

  진통 없이 이브를 얻었던 이는 지상의 첫 인간 아담 말고

는 아무도 없다 

  솟구치는 절망과 남은 시간을 우리는 스스로 깎아야 한다 

  타인과의 섹스로는 또 다른 타인밖에 낳지 못한다

  가끔은 양성동물로 엎드려 혼자서 앓자

  갈비뼈 하나로 부족하거든 남은 갈비뼈 차례로 뽑아 그

림자까지라도 붉게 칠하자

  관 뚜껑 여미고 돌아가는 날

  하느님 앞에 조용히 묻자

  갈비뼈 몽땅 사라진, 물거품보다도 무모한 껍질! 지상에

왜 인간이 필요했는가

   -현대시2003. 8월호_(원제:작품)

 

   - 시작노트: 이브는 아담의 작품이었다. 작품으로써만이 외로움을 덜 수 있는 작가에게는 작품이 곧 이브일 것이다. 만인이 공유할 수 있는 작품, 사조(思潮)를 초월하여 존재할 수 있는 작품. 그런 작품을 우리는 지은이의 이름과 더불어 <대표작>이라고 부른다. 그런 <대표작>이야말로 작가의 영예이자 생명이다. 이브를 만든 건 아담이었지만, 아담을 영원케 한 것은 바로 이브다. 그 유기적 관계가 작가와 작품과의 함수다. 신의 손에서 태어난 아담 앞에 순수인간인 우리의 절망은 당연한 현실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직 열정과 시간이 남아 있다. 작가정신은 종국의 허무를 염려하지 않는다. 과정의 아름다움이 결과보다 우위라는 점을 잊지 않는다. 2004. 6.20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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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열매보다 강한 잎』에서/ 2006.9.25. <(주)천년의시작>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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