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뼈마디 모두 추리면 몇 개의 <시>자字 쓸 수 있을까
최 라 영(문학평론가, 서울대강사)
정숙자는 1988년 서정주 추천으로《문학정신》에 등단하였고 지금까지 『하루에 한번 밤을 주심은』(혜진서관, 1988), 『그리워서』(명문당, 1988), 『이 화려한 침묵』(명문당, 1993), 『사랑을 느낄 때 나의 마음은 무너진다』(성현출판사, 1993), 『감성채집기』(한국문연, 1994), 『정읍사의 달밤처럼』(한국문연, 1998)의 시집을 상재하였다.
《열매보다 강한 잎》은 그의 일곱 번째 시집이 된다. 그의 시세계는 『하루에 한번 밤을 주심은』, 『그리워서』, 『이 화려한 침묵』, 『사랑을 느낄 때 나의 마음은 무너진다』를 중심으로 한 고전적이고 낭만적인 연가(戀歌)풍의 시편에서, 『감성채집기』와 『정읍사의 달밤처럼』을 중심으로 한, 단시(短詩) 형식의 모더니즘적 시풍으로 전환하였다. 그의 일곱 번째 시집인 《열매보다 강한 잎》은 그의 시세계에서 세 번째 단계를 보여주는데, 관념적, 사색적이면서 자기성찰적인 면모가 두드러진 것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의 시는 일상의 작은 소재와 사물을 다루면서도 시인만의 깊이 있고 고요한 사색의 풍경을 보여준다. 얼핏 보아서는 그의 사색의 풍경들은 사소하고 비슷비슷한 일상의 일들 같다. 그러나 귀를 대고서 그의 시에 가만히 기울이면 그의 시에서 굴러나온 ‘물방울들’이 ‘씨앗’ 속 생명의 ‘물줄기’를 이루면서 땅 위에 솟아오른 ‘두 잎’이 되고 다시 나무가 되고 고요하고 촉촉한 숲이 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즉 그의 시들은 단일한 사고의 뿌리를 보여주는데 좁은 듯하면서도 섬세한 깊이가 있다.
이번 그의 시집에서 주조를 이루는 것은 ‘형벌 받은 자의 의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형벌의 원인은 그가 그토록 집념한 대상한 대상인 바로 ‘시’로부터 기원하고 있다.
이윽고 그가 나타났다. 나는 유리를 모조리 살펴본 후 이렇게 말했다. “이런! 색유리는 없구먼? 장밋빛이며, 붉은 것, 푸른 것, 마술의 유리, 천국의 유리는 말야? 이런 뻔뻔스러운 사람 보았나! 이런 빈민굴을 버젓이 돌아다니면서, 인생을 아름답게 보여주는 유리 한 장 안 갖고 다니다니!” 그러고는 층층대 쪽으로 왈칵 떠밀자, 그는 비트적거리며 투덜거렸다./나는 발코니에 다가가 조그만 화분을 집어, 사나이가 현관 앞에 다시 나타났을 때, 유리 지게 위에 수직으로 떨어뜨렸다. 그는 그만 나둥그러지고, 가엾게도 전 재산이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벼락에 부서지는 수정궁(水晶宮)의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나는 내 미친 지랄에 취하여 그를 향해 부르짖었다. “인생은 아름다워야지! 인생은 아름다워야지!”/이토록 신경질적인 장난에는 위험이 뒤따르기 마련이며, 흔히 비싼 값을 치르는 수가 많다. 그러나 일순간 속에 무한한 쾌락을 맛본 자에게 영원한 벌이 무슨 상관이랴?
-보들레르『빠리의 우울』중에서「못된 유리 장수」부분, 정숙자 산문「시와 천재」에서 재인용, (『애지』2004. 겨울호 )
맨발로 호미질을 하고 나서 싸들고 온 커피를 마실라치면 대지는 그대로 다탁이었다. ‘못된 유리 장수’가 가져오지 않았던 색유리도 하늘 가득 쌓여 있었다./어느 날. 그 아름다운 색유리를 바라보고 있는데 나보다 훨씬 나어린 부인이 옆에 와 앉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물었다. “왜 밭에다 꽃나무를 심었능교?” 나는 “눈으로도 먹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답하였다. 부인은 “괴짭니더!” 하며 소리내여 웃었다. 나도 웃었다. 해바라기와 장미꽃 웃음꽃 향기가 시간을 가로질러 이 원고지에까지 배어든다. 품평회에서의 꼴등은 내 차지였지만, 봄여름가을 내내 쾌락을 맛본 나에게 그런 등위가 무슨 상관이었으랴.
-앞의 산문 「시와 천재」부분
전자의 글은 보들레르가 유리장수에게 인생을 아름답게 보여주는 색유리가 한 장도 없다고 하여 유리 지게 위에 화분을 던져 부수며 외치는 장면이다. 그리고 후자의 글은 시인이 군인인 남편과 기거하던 군인아파트에 소속된 텃밭 한 쪽에다 ‘장미와 해바라기’를 심으며 그 꽃들 즉 ‘그 아름다운 색유리’를 눈으로 ‘먹는’ 장면이다.
즉 시인의 의식은 보들레르의 ‘유리장수 일화’를 원형으로 하여 단적으로 나타난다. 그가 밭에 심은 ‘꽃들’을 보들레르의 ‘아름다운 색유리’라고 지칭한 것과 마찬가지로, ‘일순간 속에 무한한 쾌락을 맛본 자에게 영원한 벌이 무슨 상관이랴’는 보들레르의 구절은 ‘품평회에서의 꼴등은 내 차지였지만 봄여름가을 내내 쾌락을 맛본 나에게 그런 등위가 무슨 상관이랴’와 각각 상응한다.
이와 같이 시인에게는 ‘일순간 속의 무한한 쾌락’과 ‘영원한 벌’을 동시에 받은 자의 의식이 작용하고 있다. ‘무한한 쾌락’과 ‘영원한 벌’은 한 뿌리인 그의 ‘시’에서 근원한다. 그는 시인이 의사가 되기를 바란 오라버니가 어렵게 보내준 중학교에서 ‘유리창 너머로 흘러가는 구름’과 ‘시’에 경도되어 자나깨나 시만을 베끼고 외고 짓느라 더 이상의 진학을 사양하고 ‘일생동안 피 흘려야 할 운명과 손을 잡’았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유리창 너머로 흘러가는 구름에 정신을 빼앗겼다. 앉으나 서나 시만을 베끼고 외우고 혹은 지었다. 결국 전과목의 성적은 엉망이 되고 말았다. 그런 나에게 실망한 오빠는, -모 상업여고의 문예장학생으로 입학할 수 있는 길을 터 주었다. 그런데도 나는 더 이상의 진학을 사양하고 일생동안 피 흘려야 할 운명과 손을 잡았다./그리고(.....) 40년이 지났다. 어리석은 꼬맹이가 선택한 40년은 400년 어치에 해당하는 고통과 고독, 고뇌를 수반하였다(정숙자 산문「시와 인연」,『애지』2004. 가을호).'
그가 밭에다 꽃나무를 심고 품평회에서 꼴등을 차지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가 경도된 ‘시의 열기’는 그의 인생에 있어서 결정적인 방향을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열매보다 강한 잎》의 주제는 유년과 청년시절에 그가 시인으로서 받은 형벌의 무게를 섬세하면서도 간절하게 드러내고 있다.
화엄경 첫 장만한 우리 집 거실에서
의자 깊숙이 구겨져 묻힌, 나는
몇 십 년 뒤적거린 사고의 무덤이다
일 년에 한 번쯤 흙 돋우고
더러더러 잡풀 줄거리 들추어내는
그쯤으로 나는 무덤을 돌본다
잔디 뿌리와 머나먼 하늘 사이, 모처럼
정화된 시간이 “초롱”하고 소리를 내면
천지에 가득 꽃비가 온다
무덤이야 고요와 고요가 몸 비비는 곳
무덤이야 고요와 고요가 말 나누는 곳
강물들 바다로 달리는 오밤중이면
내 삶의 소란은 한데 모여 고요를 향해 걷는다
제깟 무덤이 무슨 변화가 있겠느냐고?
그러나 무덤도 까맣게 타고
살아나고 바람을 견딘다, 너호 너호
아주 죽을 죽음을 기다린다
동그라미 밭두둑 되고
난장이 되고, 다시 또 청산이 되면, 그때 바로
고요는 고요조차 모르는 고요이려니…
화엄경 첫 장 열린 양력 2월 햇빛 속에서
깃털 민숭한 몸을 오므린다
아슬한 공중으로 새 한 마리가 사라진다
-「나의 니르바나」 전문
1
또 팔뚝 하나 바람이 끌고 간다
온몸 딸려나간다
억누른 신음만이 제자리 박혀 일만이천 봉우리를 접는다
2
이 하루 저 한 해가 비틀고 더듬는다
서성이는 그림자, 술렁이는 목소리, 청룡언월도 숨겨둔
구름
짧은 칼도 피에는 깊다
3
물결치는 뭇 산 웃고 넘는 삶
너도 산 나도 산이다
백 년, 천 년, 억만 년 아니아니 십 년만 돌아보아
도
오늘의 산은 산이 아닐 걸
4
절벽에 돋아났어도 강을 건넌 나무가 바로 문인목
5
그의 과거를 이길 수 있는 그늘은 없다
뛰어넘을 잎새는 없다
일초일순 잠들지 못한, 정수리보다 눈물이 푸른
6
평지의 잣대로 재면 안된다
하늘도 멀리 달아나는 늪 비바람 끊임없이 솟아나는 숲
그 모서리에 걸린 나날을 고독에 그을린 빛을
-「문인목」전문
전자 시편은 사색에 잠겨 시를 짓는 시인의 현실적 자리와 정신적 기쁨의 자리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시인은 고요한 사색 속에서 ‘초롱’하고 소리를 내면 ‘천지에 가득 꽃비가 오’는, ‘고요와 고요가 몸을 비비고’ ‘고요와 고요가 말을 나누’는 순간을 즐긴다. 그런데 시인의 시적 상상 속에서만이 이러한 즐거움이 가능하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초롱’하고 소리를 내면 천지에 가득 꽃비가 오는 사색의 ‘나무’는 비탈진 절벽에 서 있다는 것이다. 후자 시편에서는 시인이 맞이했던 운명의 자리에 대한 인식이 상징적으로 나타나 있다. 시인의 최근 시편들에서 ‘비탈진 곳’에 서 있거나 혹은 ‘매달리’고 있는 모티브가 빈번히 나타난다. ‘비탈진 곳에 선 자’와 ‘매달림’의 자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위 시의 ‘문인목’이다.
‘문인목’이란 벼랑․절벽에 돋아나고도 잎을 피우고 가지를 키워나간 것으로서, 절벽의 세찬 바람에 가지를 뻗어나가고 위태하고 메마른 바위틈에 뿌리를 박아나간 엄청난 인내와 생명력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그러나 벼랑을 붙잡고 홀로 선 그 나무는 일만이천 봉우리와 구름 즉 ‘평지의 잣대’, ‘평지의 나무들’은 바라볼 수 없는 까마득한 하늘가 풍경과 세상의 만라를 관망하며 볼 수 있다.
‘문인목’이 그의 현실적 자리로부터 성장하고 또 그 위태한 자리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길은 눈을 감고 ‘꿈’에 잠기는 것이다. 그 나무의 ‘꿈’을 통하여 위 시에서처럼 시의 ‘꽃비’가 내리는 것이다. 이번 시집에서는 ‘숲’과 ‘나무’, ‘꽃’, ‘열매’ 등에 관한 상념이 많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이러한 시인의 ‘문인목 의식’과 연관지어 나타난다.
시인이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그가 하나의 문인목으로서 끊임없이 ‘두 잎’을 ‘피우고’ ‘걸어나가며’ 나무 속 잔물결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호수’를 상상하는 힘 때문이다(‘마지막엔 이것뿐이다/꽃 아니다 기둥 아니다 수많은 잎새도 아닌 다만 두 잎뿐이다/두 잎이면 다시 하늘을 열고 별을 기르고 마파람을 부를 수 있다/껍질 속 두 잎은 우뇌/좌뇌란다/좌청룡 우백호란다/싸앗들은 스스로가 명당이요 명문이란다/흔들림 없는 두 잎을 열고 나무는 걸어나간다/큰길 소롯길 모두 제 안에 있다’,「열매보다 강한 잎」첫부분).
그리하여 시인의 니르바나 즉 열반은 벼랑 끝 문인목의 자리에서 눈을 감고 꿈을 꾸는 의지의 끝에 얻어지는 결실인 ‘시적 영감’의 순간이다. 즉 ‘거실 의자 깊숙이’ 앉은 시인의 뇌리 속에서 내적 합일체와의 끊임없는 교감과 환상을 통하여 시인이 당면한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극복해낸다. 신비적 통일체를 통한 그의 환상은 그가 경도했던 보들레르의 심미적 ‘상응’과도 상통하며 그는 그 환상을 고요한 자신만의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그리하여 그의 ‘언어’는 사색의 고요한 바다에서 한참을 건져 올려도 떨어지지 않고 부스러지지 않는 ‘견고함’을 지닌다.
모나리자의 액자 속에는 소리가 없다. 그녀의 배경은 어
둡다. 남들은 백(百)을 들을 때 삼사십을 듣는 모나리자는
늘상 그렇게 앉아 그렇게 웃을 수밖에 없다. 남들이 손뼉
칠 때 손뼉치고 일어설 때 일어선다. 모나리자는 봄비 소
리와 가랑잎 구르는 소리를 알지 못한다. 눈오는 소리의
기억을 갖지 못한다. 그러나 어린 모나리자는 구김살 없는
반달로 자라 모나리자가 되었다. 그녀는 어느 회합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다. 안 들리는 귀는 졸음을 몰고 오지만
입술을 깨물망정 흔들거리지 않는다. 그녀의 뒤에는 언제
나 네모난 하늘의 조용한 틀이 있다. 모나리자가 듣는다는
것은 읽는 것이다. 그 어리숭한 눈으로, 전신의 세포로 상황
을 읽고 덩어리진 소리를 조각한다. 스테레오는 어림없다.
그녀가 옷을 벗으면 온몸이 귀라는 것을 알게 된다. 모든
살갗이 귀 모양으로 열려 있다. 그녀의 어깨는 어떤 바람
에도 능선으로 놓일 뿐이다. 아무도 아는 이 없다. 그녀가
스스로 달팽이관을 열어 보이기 전에는 그저 행복한 모나
리자일 따름이다. 그녀의 왼쪽에만이 사람이 있고 언어가
있다. 누구라도, 연인이 아니어도 나란히 앉거나 서서 말하
며… 걷는다. 오른쪽 귀는 창세기 이전으로 잠잔다. 왼쪽만
이 삼사십 퍼센트의 파도 소리를 듣는다. 삼사십을 들으며
오늘도 모나리자는 모자라는 이마를 가꾼다. 그녀의 그늘
을 이렇게까지 아는 사람은 모나리자에서 차단된다. 세상
은 모르는 만큼 고요하다.
-「모나리자는 듣지 못한다」전문
말이 추려진다
살아남은 말은 꽃보다 별보다 바람과 바람 사이 나비보
다 향긋하다
말들은 견고함을 지향한다
한 마디의 말은 꿈틀대고 한 무더기의 말은 출렁거린다
폭풍을 유발한다
시간은 그것을 흐름이라 말한다
넉넉하다 말은
예전에도 오늘도 묘한 뼈를 숨기기에
푸른 뼈를 품었기에
날카로운 말들이 겹겹으로 짚인 게 어제 오늘이었을까
부러진 말들, 돌아간 말들, 없는 말들을 응시해야 하는
포만의 슬픔 가운데
뼈가 뼈를 건드린다 허둥대는 말들이 구름으로 내려간다
-「숲」전문
시인이 모나리자의 그림 속에서 발견하는 것은 ‘고요함’이다. 모나리자의 고요한 모습은 시인의 현실적 자화상이다. 이것은 ‘그녀의 왼쪽에만이 사람이 있고 언어가 있’고 ‘왼쪽만이 삼사십퍼센트의 파도 소리를 듣는’ 다는 구절로써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즉 귀 수술을 여러 번 했어도 오른쪽 귀를 잘 듣지 못하는 시인의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러나 고요한 모나리자는 잘 들리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잘 들을 수 있다. 즉 그가 ‘옷을 벗으면 온몸이 귀라는 것을 알게’ 된다. 더군다나 그의 ‘모든 살갗’은 귀 모양으로 열려 있’다. 잘 들리지 않는 그의 ‘귀’는 ‘온몸의 살갗’으로 듣는 ‘귀’를 만들며 전신의 혼력으로 받아들인 ‘말’이기에 견고한 가치를 창조하게 한다.
그리하여 그에게 말은 ‘추려지는’ 것이며 ‘살아남은’ 것이다. 살아남은 말들은 견고한 생명력을 지닌다. ‘말’은 시인에게 ‘詩的 상념’으로의 길이며 ‘시적 상념’이란 그에게 운명의 지침을 바꾸어 놓은 형벌이면서 그로 하여금 끊임없이 집착하고 꿈꾸도록 만드는 磁力을 지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말’, 그의 ‘詩’는 그의 운명을 고스란히 압축한 ‘푸른 恨’이며 ‘푸른 뼈’이며 ‘절박한 꿈’이다.
막대기가 셋이면 <시>자字를 쓴다
내 뼈마디 모두 추리면 몇 개의 <시>자字 쓸 수 있을까
땀과 살 흙으로 돌아간 다음 물굽이로 햇빛으로 돌아간
다음 남은 뼈 오롯이 추려
시 시 시 시 시 " '
이렇게 놓아다오
동그란 해골 하나는 맨 끝에 마침표 놓고 다시 흙으로 덮
어다오
봉분封墳일랑 돋우지 말고 평평하게 밟아다오
내 피를 먹은 풀뿌리들이 짙푸른 빛으로 일어서도록 벌
레들 날개가 실해지도록…
가지런히 썩은 <시>자字를 이슬이 먹고 새들이 먹고 구름
이 먹고 바람이 먹고…
자꾸자꾸 먹고 먹어서 천지에 노래가 가득하도록…
독을 숨기고 웃었던 시는 내 삶을 송두리째 삼키었지만
나는 막대기 둘만 있으면 한 개 부러뜨려 <시>자字를 쓴다
젓가락 둘 숟가락 하나 밥상머리에서도 <시>자字를 쓴다
못 찾은 한 구절 하늘에 있어 오늘도 쪽달 허공을 돈다
-「무료한 날의 몽상 -無爲集 2」전문
위 시는 ‘시’에 대한 시인의 형벌과 꿈과 집념의 열도를 절실하게 보여준다. ‘막대기가 셋이면 <시>자字를 쓴다’, ‘내 뼈마디 모두 추리면 몇 개의 <시>자字 쓸 수 있을까’. 자신의 동그란 해골을 맨끝 ‘마침표’로 놓고 평평하게 밟아달라는 것, ‘독을 숨기고 웃었던 시는 내 삶을 송두리째 삼키었’지만 ‘나는 막대기 둘만 있으면 한 개 부러뜨려 <시>자字를 쓴다’. 즉 시인이 자신의 ‘뼈’를 부러뜨려서라도 <시>를 쓰겠다는 매우 절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막대기 두 개만 있으면 부러뜨려 <시>자를 쓴다는 구절들은 ‘시에의 경도’로 인해서 그가 기꺼이 받아야 했던 형벌 즉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시에만 집념한 것, 시인으로서의 ‘천재 의식’과 ‘현실’과의 괴리 속에서 끊임없이 괴로워해야 했던 운명의 형벌을 그대로 보여준다(‘독을 숨기고 웃었던 시는 내 삶을 송두리째 삼키었지만 나는 막대기 둘만 있으면 한 개 부러뜨려 <시>자字를 쓴다’). 그리고 어린 시절 <시>만을 추구했기 때문에 오히려 <시>로써 현실적 자리를 매김하기 어려운 시인의 역설적 운명을 보여주는 것이다.
『열매보다 강한 잎』은 비탈진 절벽에서 뿌리를 뻗고 매달린 ‘문인목’이 바람에 ‘청각’을 잃고 꿈을 꾸면서도 단지 ‘두 잎’을 열고 ‘호수’를 꿈꾸는 의지 속에서 견고하고도 단아한 ‘나무’로 자라나는 모습 즉 시인이 걸어온 운명의 자화상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 운명의 형상화는 고요하면서도 섬세한 식물적 상상력을 통하여 견고하게 드러나고 있다. 특별한 비유나 수식어구가 전혀 없이도 그의 시는 ‘단아’하면서도 ‘은근한’ 개성의 자리를 보여주고 있다.
특징적인 것은 그 황량한 곳에 선 ‘문인목’의 ‘나이테’ 속 ‘잔물결’에는 ‘따뜻한 인간적 온기’가 늘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일상을 다룬 시편들을 보면 사물과 인간에 대한 섬세하면서도 따뜻한 시선과 배려가 곳곳에 묻어나고 있다. 군인인 남편을 따라 군인아파트에서 살던 시절 자신이 시 쓰기에 집중하기 위해 일정시간 ‘사색 중’이란 푯말을 대문에 붙여서 자신의 ‘사색시간’도 보장받고 이웃의 급한 용무에도 온정을 베풀 수 있도록 한 일화(<시와 천재>)에서도 이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즉 시에 대한 강한 집념만큼이나 인간에 대한 애착과 애정도 짙게 보여주는 것이 그의 시편이다.
이와 같이 《열매보다 강한 잎》은 시를 향한 시인의 집념을 ‘식물적 상상력’을 주조로 하여 형상화하고 있다. 즉 시에 경도되고 시에 의해 운명이 뒤바뀌면서도 시 때문에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의 자화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 정숙자의 시는 그의 영혼과 육체의 염원으로써 건져낸 ‘뼈마디’와도 같은 절실함과 견고함을 빛내고 있다. 그리고 절제되고 견고한 언어의 틈 사이로는 천재적인 감성과 풍부한 인간애가 넘쳐 나오고 있다.
서푼짜리 친구로 있어줄게
서푼짜리 한 친구로서 언제라도 찾을 수 있는
거리에 서 있어줄게
동글동글 수너리진 잎새 사이로
가끔은 삐친 꽃도 보여줄게
유리창 밖 후박나무
그 투박한 층층 그늘에
까치 소리도 양떼구름도 가시 돋친 풋별들도
바구니껏 멍석껏 널어놓을게
눈보라 사나운 날도
넉 섬 닷 섬 햇살 긴 웃음
껄껄거리며 서 있어줄게
지금 이 시간이 내 생애에 가장 젊은 날
아껴아껴 살아도 금세 타 내릴
우리는 가녀린 촛불
서푼짜리 한 친구로
멀리 혹은 가까이서 나부껴즐게
산이라도 뿌리 깊은 산
태평양이 밀려와도 끄떡없는 산
맑고 따뜻하고 때로는 외로움 많은
너에게 무인도로 서 있어줄게
-「무인도」전문
'제7시집 · 열매보다 강한 잎'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들은 어떻게 말하는가/ 정숙자 (0) | 2010.09.12 |
---|---|
핑크렌즈효과/ 정숙자 (0) | 2010.09.12 |
겨울꽃/ 정숙자 (0) | 2010.09.12 |
시집『열매보다 강한 잎』표4/ 신범순 (0) | 2010.09.12 |
시집『열매보다 강한 잎』표4/ 반칠환 (0) | 2010.09.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