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현
정숙자
김나현은 2003년 7월 어느 날 태어났다
그리고 오늘은 2005년 6월 어느 날이다
나현 엄마 부탁으로 나현을 봐주러 갔다. 나현 엄마는 수
박이 배달되거든 잘 받아 놓으라는 당부를 남기고 외출하
였다. 얼마 안 있어 초인종이 울렸다. 나는 재빨리 일어나
현관문을 열고 수박을 들여놨다. 신장 87cm의 나현, ―종
종종 달려와 수박을 바라보더니 “안녕?”하고는 대뜸 뽀뽀
를 했다. 감동에 싸이는 수박의 표정을, 촉촉해지는 줄무늬
를 나는 보았다. 나현도 나도 수박도 기분 대박이었다. 나
현과 수박과 나는 아무 노래나 막 불렀다.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나현은 말이 좀 이른 편이다. 아기 발
음이지만 멜로디도 거의 틀리지 않는다. 나비야 나비야 이
리 날아오너라. 나는 김나현을 통해 흙과 덩굴을 떠나온 수
박일지라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수박이 입속 말고
도 마음을 즐겁게 해 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체중이
12.5kg밖에 안되는 김나현이 요정이라는 것도 알았다. 비
로소 나는 나현을 안아올릴 때 그 투명한 날개가 다칠까봐
조심하였다. 나현과 수박과 나는 한 덩어리의 환희였으며
한 덩어리의 별이었다.
나현 엄마가 돌아와 수박을 쪼갰을 때
수박에서는 빠알간 장미꽃 냄새가 났다
-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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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열매보다 강한 잎』에서/ 2006.9.25. <(주)천년의시작>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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