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시집 · 공검 & 굴원

정숙자_「북극형 인간」에 대한 시작노트 : 북극형 인내

검지 정숙자 2019. 1. 12. 02:35

 

 

<웹진『시인광장』2019-1월호/ 이달의 시작Note : 시「북극형 인간」/ 시작노트 「북극형 인내」>

 

    시>

    북극형 인간

 

 

    정숙자

 

 

  육체가 죽었을 때 가장 아까운 건 눈동자다

  그 영롱함

  그 무구함

  그 다정함

  이, 무참히 썩거나 재가 되어버린다

 

  다음으로 아까운 건 뇌가 아닐까

  그 직관력

  그 기억력

  그 분별력

  이, 가차 없이 꺾이고 묻히고 만다 

 

  (관절들은 또 얼마나 섬세하고 상냥했던가)

 

  티끌만한 잘못도 없을지라도 육신 한 덩어리 숨지는 찰나. 정지될 수밖에 없는 소기관들. 그런 게 곧 죽음인 거지.

 

 

  비

  첫눈

  별 의 별 자 리

  헤쳐모이는 바람까지도

 

  이런 우리네 무덤 안팎을 위로하려고 철따라 매스게임 벌이는지도 몰라. 사계절 너머 넘어 펼쳐지는 색깔과 율동 음향까지도

 

 

  북극에 길든 순록들 모두 햇볕이 위협이 될 수도 있지

  우리가 몸담은 어디라 한들 북극 아닌 곳 없을 테지만

 

  그래도 우리는 정녕

 

  햇빛을, 봄을 기다리지. 죽을 때 죽더라도

  단 한 번 가슴 속 얼음을 녹이고 싶지

    -『시와정신』2018-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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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Note>

   북극형 인내

 

                                                

  흘리지 않은 눈물은 어디로 가는가. 눈을 거치지 않은 그 눈-물은 대체 어디로 간단 말인가. 신체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은 그 눈-물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 눈-물들의 영지는 어디란 말인가.

  흘리지 않은 눈물의 언어란 얼마나 깊은 것일까. 함부로 발설되지 않은 그 눈-물들은 어떤 산하를 건너는 것일까. 본인의 손수건에도 묻지 않고, 이웃의 귓전에도 닿지 않은 그 눈-물들의 출렁임은 어떤 음파란 말인가.

 

  “태초에 빛이 있었다.”라는 말은 ‘태초에 눈이 있었다.’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흘리지 않은 눈물은 침묵과 함께 육체를 벗어나는 것이었다. 서슬 시퍼런 고독과 인내를 거쳐 지상에서는 가장 발 시린 북극으로 떠나는 것이었다. 거기 안착하여 감히 누구도 흔들지 못하는 빙벽을 쌓아 올리는 것이었다.

  북극의 빙산의 여정을 알 리 없는 태풍은, 그 북극의 빙산의 새하얀 빛을-꿋꿋함을 할퀴고 갈 뿐. 어떤 타격에도 으레 꿋꿋하려니-으레 흰빛이려니, 휘두르고 휘감고 갈 뿐. 그리하여 빙폭은 더욱더 견고해지는 것이었다.

 

  ‘언젠가 눈을 감는다.’라는 말은 ‘언젠가 빛이 꺼진다.’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북극에 태어나고 싶었던 인류가 어디 있을까. 북극이 춥지 않은 종족이 어디 있을까. 그는 적응했을 뿐이다. 그에게 주어진 혹한의 삶을 신에게 찾아가 교환할 수 없는 것이었을 뿐이다. 빙하를 신은 발자국 되짚어 가면,

  거기 발설되지 않은 역린이 있다. 눈썹 안쪽으로 억누른 분노, 손수건에조차 들키지 않았던 신음. 아물지 못한 그 순간순간이 척추가 되고, 무릎이 되어… 모든 빛을 합친 빛-잉크 아래 순백의 지면을 마련해줬던 것이다.

 

  “우리가 몸담은 어디라 한들 북극 아닌 곳 없을 테지만// 그래도 우리는 정녕”

 

  한 번은 봄을 만나고 가야 하리라. 그때-거기서 싱싱한 잎도 피우고 상냥한 봄을 보듬어 꽃술도 한 번을 터트려봐야 하리라. 그 꿋꿋함이-새하얀 빛이 눈물의 기도였다는 것 또한 한 번은, 꼭 한 번은 확인해봐야 하리라.

  신에게 찾아가 바꿔올 수 없었던 숙명 정교히 빚어, 생애와 맞먹을 한 편의 노래 건질 수 있기만을 염원한 행로. 그것이 어찌 허술한 삶일 수 있으랴. 고달프기만 한 궤적일 수 있으랴. 끝내 북극형 인내가 혈액인 자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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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진『시인광장』2019-1월호 <이달의 시작 Note 11>에서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등, 산문집『행복음자리표』『밝은음자리표』, 질마재문학상 · 들소리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