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
이만식
오늘 나는 참을 수 없었다.
자기도 모르게 감정의 폭발이 있었다.
그건 견딜 수 없는 압박감에 대한 반발이었다.
그녀가 잊지 못할 압박을 가하는 이유는
나를 위해서 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무엇이 되어 세상 속에서 살고 있지만
그건 그저 살기 위한 방편일 뿐이었다.
더 이상 노력해서 무엇이 되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녀는 누구나처럼 나도
무엇이 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 나는 정말로 무엇이 되고 싶지 않다.
이제 나는 정말로 나에게서
무엇이 되어버린 나에게서도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무엇이 되라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계속되는 압박감을 참을 것이라고
그렇게 믿는 그녀의 신념을 거부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누구나 다 무엇이 되고 싶어 한다는 확신,
그런 게 나는 싫다.
그런데 무엇이 되어 있는 나는
입을 열어 그렇지 않다고
그렇게 되어 있지만 그렇지 않고 싶다고 말할 수가 없다.
내가 혼자 비밀리에 하는 일은
무엇이 아니게 되려는 과정이었는데
무엇이 되어 있는 채 돌아다니니
그녀를 포함한 모두가
내가 무엇이 되고 싶어 한다고 믿게 만들었나보다.
아, 나는 무엇인데
어떻게 무엇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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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너라는 즐거운 지옥』에서/ 2018. 6. 15. <시산맥사> 펴냄
* 이만식/ 1992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하느님의 야구장 입장권』『거꾸로 보는 한국문학사』외, 문학평론집 『해체론의 시대』, 번역서 존 캐루악의 『길 위에서』1 · 2권, 조너던 컬러의 『해체비평』등, 연구서 『T. S. 엘리엇과 자크 데리다』 『영문학과 상호 텍스트성』외, 학습서 『영미문학개론』 『실용 영어』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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