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사제들
김옥성
가을걷이 끝난 들판 위에
전깃줄 위에 떼를 지어 내려앉는 그들을 보라
때가 되었다
나무들이 늑골을 다 드러내고
가시떨기나무 덤불 속에서 시취屍臭가 흘러나온다
여기가 죽은 신의 무덤인지도 모른다고
검은 사제들이 합창하고 있다
깃을 칠 때마다 저승의 차가운 바람이
깃털 사이를 맴돈다
아직 감염되지 않은 가금과 가축들까지 생매장되고 있다
비명 소리가 바람을 타고 흘러온다
나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직립한 백골들처럼
저기 저 자작나무들이 묵념을 하는 소리까지
무엇을 기다리느냐는 듯 몰아치는
바람에는
시베리아 설원의 냄새가 묻어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생각났다는 듯이
짖어대는 그들의 합창은
깊고 무겁고 어둡고 혼탁하여
검은 날개들이 저녁 하늘을 온통 검게 뒤덮고
여기가 지옥이라는 듯이 미친듯이
군무를 펼친다
이 지옥의 계절이 끝나고 이 땅에
봄이 도래하거든
나는 그들의 동토로 돌아갈 것이다
-전문-
▶ 사람들은 신의 가호를 벗어나기 시작했다(발췌) _ 서윤후
이 시 감각적으로 지상에 버려진 풍경들을 모아 새로운 국면을 제시하기도 한다. 우리가 한 번쯤 본 적 있는 풍경에서 굴절되어 더 어둡고 혼탁한 세계를 데려다 놓는 것이다. 시인은 "지옥의 계절"을 예감하고, 동시에 "봄"과 함께 "그들의 동토"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한 삶을 요약한다면 이와 같을 수도 있을 것이다. 흰 바탕으로 시작해 검은 날개가 되어 끝나는 인간의 공작 시간을. "죽은 신의 무덤"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검의 사제들의 부축을 받아 인간도 신도 없는 세계로 가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직립한 백골"들처럼 보이는 자작나무와 시취屍臭가 흘러나오"오는 가시떨기나무 덤불을 지나면, 마주하게 될 한 세계. 우리는 이 세계가 너무 궁금하여 여기까지 왔다. 죽은 자의 후기는 들어볼 수 없는, 기나긴 일회성의 삶을 수없이 번복하고 반성하며 매일 새로운 듯 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신에게서 벗어난 인간들은 '죽음'과 가까이에 놓여 있다. 이 지면을 통해 보게 된 몇몇 작품들 모두 어떤 결말이나 마지막을 예감하게 한다. 끝낼 수만 있다면 그것은 인간에게 손쉬운 문제겠으나 인간이 살면서 풀지 못한 수많은 관념들은 광활한 시간 속에서도 지속될 것이다. 신은 아무래도 인간에게 절망을 깨우치는 편에 놓인 것 같다. 신의 가호를 받으며 착실한 깨달음 속에 성장하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의 모습보다는, 절망에 가깝게 깨지고 바스라지며 그렇게 매순간 태어날 인간을 기대하는 것 같다. 그렇기에 "동토로 돌아갈 것이다"라는 인간의 헛된 선언이 낯설지 않게 읽히는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시작되어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가를 탐문하기보다는, 돌아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알게 되는 일로부터 창궐한 세계로 입장하는 일. 이 시는 시가 끝난 뒤의 '징후'로부터 새로운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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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사』 2018. 3-4월호 <시사사 리뷰>에서
* 서윤후/ 2009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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