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2018-2월호 / 명작의 자리>
김소월, 「왕십리」
김정임
김소월(1902-1934)은 한국의 전통적인 한을 노래한 시인으로, 여전히 한국인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짙은 향토성을 전통적인 서정으로 노래한 그의 시는 오늘날까지 계속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단 한 권의 시집 『진달래꽃』을 낸 뒤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지만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이었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다섯 개의 환승역이 교차하는 왕십리는 서울에서 가장 많은 환승역을 가지고 있다. 왕십리 광장의 시인은 오가는 사람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왕십리」부분) 옛날의 그 왕십리를 머릿속에 담아 보고 있을까. 나도 함께 옛날로 돌아가 온통 눈물에 흥건히 젖은 왕십리의 또 다른 이별을 떠올려 보았다. 눈물은 슬픔의 흔적이지만 슬픔을 유발하는 것은 시인에게는 언제나 이별이었을 터, 슬픔이라는 과정을 한이라는 정서로 견디고 있다.
몸으로 돌아갈 수 없는 곳을 시는 데려다 준다. 죽음과 이별 그리고 슬픔의 과정을 견뎌야 하는 일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역사 주변은 구름처럼 모였다 흩어지는 인파들로 붐볐다. 바쁜 사람들이 미처 읽지 못한 소월의 시비 「왕십리」를 소나무 가지에 앉은 새들이 그 뜻을 먼저 헤아려보고 있는 듯하다.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소월의 이별이 겨울의 차가운 문턱에서 하얗게 빛나고 있다.
동서남북 그물처럼 얽힌 길을 달리는 저 전동차는 마음의 끝을 만나러 가는 걸까. ▩ (김정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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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참조>
往十里
김소월(1902-1934, 32세)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여드레 스무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로 삭망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
웬걸, 저 새야
울랴거든
왕십리 건너가서 울어나 다고,
비맞아 나른해서 벌새가 운다.
천안에 삼거리 실버들도
촉촉히 젖어서 늘어졌다네.
비가 와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구름도 산마루에 걸려서 운다.
-『金素月』, 韓國現代詩文學大系 6/1980.11.29. 知識産業社(초판발행)/1983.5.3.(3판 발행), 값 2,3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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