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사상』2017-12월호 / 커버스토리(발췌)
호모사피엔스가
죽었을 때
누가 애도를 할까
최재천崔在天/ 생태학자_ "알면 사랑하게 된다"
고래도 자살을 한다
누군가 나에게 태어나 가장 잘한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없이 제돌이와 그 친구들을 바다로 돌려보낸 거라고 말할 것이다. 학자로서의 업적보다도 나는 그 일이 가장 자랑스럽다. 나는 2012년 '제돌이 야생방류 시민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돌고래들을 바다로 돌려보냈다. 제돌, 춘삼, 삼팔, 복순, 태산은 불법적으로 포획되었던 남방돌고래들의 이름이다. 그 돌고래들은 각지의 사육시설에서 사람들에게 전시되고 때로는 돌고래쇼에 동원되기도 했다.
세계 각지에서 돌고래를 방류하는 운동이 지속적으로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돌고래 야생 방류에서 우리만큼 완벽한 성공을 거둔 예는 없다. 지금까지도 우리가 만든 프로토콜(계획서)이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러시아를 비롯한 다른 여러 나라에서 끊임없이 기술을 전수받기 위해 찾아오고 있다.
한 마리의 돌고래를 바다로 돌려보내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에 걸친 훈련 과정이 필요하다. 수조 속에 갇혀 있던 돌고래가 야생의 바다로 돌아가 잘 지낼 수 있을지를 알아보는 건강검진도 해야 하고, 십수 년간 조련사가 주는 죽은 물고기를 먹고 산 그들에게 활어를 잡는 훈련도 시켜야 한다. 이들은 고등어, 광어 등 살아있는 물고기를 잡아먹으면서 파도, 수온, 바람에 적응하는 야생 적응훈련을 해왔다. 우리가 개발한 프로토콜은 먼저 실내에서 훈련을 시킨 뒤 해상가두리 안으로 넣되 일단은 방파제가 있는 어느 정도 파도가 세지 않은 곳에서 다시 훈련을 시킨다. 그 후 중바다로 나아가서 파도 적응 훈련을 한다. 거기까지만 나가면 이미 그 주변에 서식하고 있는 돌고래와 서로 교신이 가능해진다. 이외에도 야생 개체군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지 않고 무리에 잘 합류시키기 위한 교감훈련도 진행한다. 서울대공원에 있었던 제돌이는 마지막 훈련까지 오는데 1년 3개월 정도가 소요됐다. 그리고 춘삼이, 삼팔이, 태산이, 복순이가 이어서 야생으로 돌아갔다. 지금 다섯 마리가 모두 잘 살고 있다. 암컷 두 마리는 새끼를 낳아서 기르고 있다. 이들뿐만 아니라 제주도에 110마리 정도의 돌고래가 사는데 단 한 마리도 이탈하지 않고 제주도 주위를 빙빙 돌면서 지내고 있다.
돌고래는 굉장히 영리하다. 거울을 보여주면 그 거울 안에 있는 형상이 자신의 모습인 것을 아는 몇 안 되는 동물 중 하나다. 그들은 자신이 포획되어 갇혀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한다. 우리가 돌고래쇼에서 보는 재롱둥이 돌고래들의 모습은 마치 조련사와 즐겁게 놀이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들은 오래 굶고 난 후 먹이를 얻기 위해 처절하게 뛰어오르는 것이다. 거기다 돌고래는 스스로 초음파를 내보내 물체에 부딪쳐 돌아오는 것을 감지하고 사는데 콘크리트 수조에 갇혀 있으면 끊임없이 들려오는 이명에 시달리며 살아야 한다. 또한 자신들이 먹이로 인해 조종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잘 안다. 때문에 포획된 대부분의 돌고래들은 깊은 우울증을 앓고 있다.
미국에서는 돌고래 '케이시'가 자살을 했다. 기본적으로 동물행동학의 이론에서는 자살을 할 수 있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사실은 다를 수도 있다. 제인 구달 선생에 의하면 침팬지도 자살을 한다. 엄마가 죽은 후 새끼 침팬지가 두 달 동안 식음을 저폐하고 있다가 죽음을 맞았다고 한다. 스스로의 의지로 목숨을 끊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다고 하지만, 세계의 동물행동학자들은 '케이시'의 죽음이 분명한 자살이었다고 대부분 합의를 보았다. 케이시는 평소와 다르게 조련사(리처드 오배리 Richard O'barry)를 보고 마지막 인사를 하듯 두어 번 고갯짓을 한 뒤 물속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런데 한참이 되어도 수면이 잠잠했다. 돌고래는 폐로 호흡을 하므로 물 밖의 공기를 들이마셔야 하는데 케이시는 도통 물속에서 나올 기미가 안 보였다. 이상하게 여긴 조련사가 물속에 들어가 보니, 케이시가 바닥에 배를 붙이고 움직이지 않았다. 몇 명의 잠수부가 동원되어 들어 올리려고 했지만 케이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돌고래 케이시는 그대로 죽음을 맞았다. 어쩌면 그토록 열망하던 자유를 찾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제돌이 야생방류 시민위원회 위원장을 맡자마자 돌고래 야생방류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다. 나는 삶들이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을 할 줄 알았다. 하지만 반대가 더 많았다. 그 이유는 첫째, 인간 복지에 쓸 돈도 없는데 웬 동물 복지냐, 둘째, 안전한 시설에서 잘 보호받고 있는 동물을 왜 위험한 데로 내쫓느냐, 셋째, 왜 돌고래만 내보내느냐, 코끼리와 침팬지도 내보내라, 하는 것이었다. 나는 기자회견에서 그들을 향해 말했다. "돌고래를 내보내기 전에 그들에게 한 번 물어몰까요? 여기서 살면 앞으로 10년 이상을 더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가면 위험하고 자칫하면 내일 죽을 수도 있다. 너는 어떻게 하겠냐? 제가 돌고래라면 저는 단 1초도 생각하지 않고 대답할 겁니다. 나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나가겠다고." 자유란 그런 것이다. 반드시 대가가 뒤따르는 것이다.
올해(2017) 7월 18일, 나는 한 신문 칼럼에 이런 글을 썼다.
"이 사업은 100퍼센트 성공한 사업이다. 이들이 완벽하게 야생에 적응한 이상 우리의 일은 끝났다. 앞으로 그 다섯 마리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은 야생에서 사는 다른 돌고래들에게도 생기는 그런 일일 뿐이다. 우리의 돌고래 야생 방류 사업은 끝났다. 완벽하게 성공으로 끝났다."
인간실록 편찬위원회
지난해(2016) 열린 '2030 에코 포럼'에서 나는 이스라엘의 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와 대담을 나누었다. 그는 자신이 저술한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에서 인간이 몇 백 년 안에 멸종한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한 술 더 떠서 "인류는 이번 세기 안에 끝장이 날 수도 있다"고 그에게 말했다. 하라리 교수가 무척 당황스러워 했다.
문학작품화하지는 않았지만, '뉴스 프롬 노웨어News from Nowhere'프로젝트로 세계적 권위의 미술 행사인 '카셀 도큐멘타'에 초청된 전준호 · 문경원 작가의 공동저서 『미지에서 온 소식』에 나는 <인간실록 편찬위원회>란 제목으로 글을 수록한 바 있다. 실록이란 원래 사관이 제왕의 역사를 연대기적으로 기술한 책을 말한다. 나는 임금이 서거하면 사관이 각자 기록해둔 자료를 가지고 들어와 실록을 편찬하던 우리 전통이, 인간이 멸종한 후 지구를 지배할 새로운 지적 동물의 전통으로 이어진다는 설정을 했다. 그런데 이 편찬위원회는 여러 반발에 직면했다. 1억 년 이상을 살았던 모기나 공룡 티렉스의 실록도 아직 못 만들었는데 겨우 수십만 년 정도 살다가 멸종할 인간의 실록을 편찬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인간실록을 만드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지구 역사상 가장 큰 만행을 저지른 인간의 이야기를 고발 차원에서 반드시 기록해두어야 한다는 말이 설득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동화적인 상상력으로 호모사피엔스가 멸종한 후의 세계를 그려본다. 과연 인간의 장례식에 찾아와줄 동물이 있을까. 아마도 우리의 죽음을 애도하는 동물들보다는 반기고 축제를 열 동물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혹시 모른다. 바퀴벌레 정도가 있을지도. 어쩌다 우리는 그런 존재가 되었을까.
만일 내세가 있다면, 우리는 마치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에서처럼 우리가 죽은 후 펼쳐질 세계를 보고 경악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 멸종의 속도를 늦추거나 되돌리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 중이다. 오늘도 지구가 걱정스럽다. (인터뷰 정리 : 은현희, 윤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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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상』2017-12월호 <커버스토리>에서
* 최재천崔在天/ 서울대 동물학과 졸업, 하버드대 곤충행동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 취득, 미시간대 조교수, 서울대 교수 역임, 1999년 『개미제국의 발견』외 수십 권의 저서 집필, 국립생태원 초대 원장 역임, 현재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인간과 동물의 성과 사회성의 생태와 진화 그리고 동물의 인지 능력과 인간 두뇌의 진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으며, 진화생물학자/ 동물행동학자/ 생태학자인 동시에 환경운동가로도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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