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시인의 시

정과리_서정주의 문 앞에서 숨 고르기/ 자화상 : 서정주

검지 정숙자 2017. 10. 25. 19:24

 

 

    자화상

 

    서정주(1915~2000, 85세)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었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깜한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

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었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티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우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트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어리며 나는 왔다.

    - 전문, 『미당 서정주 전집 1 시』, 은행나무, 2015, p.27

 

 

  서정주의 시 「자화상」이다. 한국인들이 애송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꽤 좋아하는 시이다. 한국 독자들은 이런 류의 시, 즉 사적인 사연을 담고 있는 시를 좋아하는 편이다. 황지우의 「활엽수림에서」도 비슷한 종류의 시인데, 나는 이 시가 인용되거나 시늉되는 걸 여러 번 보았다. 이 시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사람들의 해석이 있었다. 그 해석들은 대체로 적절하다(해석들에 대한 종합적인 정리로는 오형엽, 『한국 근대시와 시론의 구조적 연구』, 태학사, 1999, pp. 267~282가 유용하다.) "애비는 종이었다"라는 시구로 드러난 삶의 치욕적 환경, 아비가 부재한 처지에서 태어난 아들의 암담한 전망,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라는 진술이 가리키는 아들-나의 '일탈'적 기질. 그 기질에 스스로 부여한 의미의 실현태로서의 '시'에 대한 자긍심 가득한 선언, 몸의 환경("병든 수캐마냥 헐떡어리며")과 정신의 의지("이마 우에 얹힌 시의 이슬") 사이의 선명한 대비와 그 대비를 이어주는 치열성("몇 방울의 피") 등은 독자를 빨아들이는 강력한 흡인력을 보여준다. 이 과정을 통해서 양극단 사이의 이동이 일어나는 게 가장 큰 매력이다. 즉 노예의 삶으로부터 "찬란히 티워 오는 어느 아침"의 "이슬"의 삶으로의 초고속 이동 말이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흥미로운 것들이 있다. 우선 "손톱이 깜한 에미의 아들"이 어떻게 제 몸 속에 들어 있는 "팔할의 바람"을 자각하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다음 그 자각을 통해 그가 이룬 세상의 범위는 어디에서 어디까지인가? 하는 것이다.

  이 질문들은 서정주의 시가 김영랑의 시의 연장선상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과 연관되어 있다. 김영랑이 개시한 '기다림'의 시학이 서정주에 와서 연장되면서 특이하게 변형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점을 오늘 얘기하려고 했으나 그것을 위해서 지금까지의 얘기를 복습해서 두뇌를 정돈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한국시의 탄생과 그 생장과정을 순차적으로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1) 한국의 근대시는 한국인의 역사적 고난을 한국어 안으로 수용하여 변용 - 극복하려고 하는 노력 속에서 특정한 문학적 형식을 갖추어 나갔다.

  (2) 김소월과 한용운의 시가 역사적 고난에 대한 주체적 응전을 '정합적인' 태도의 구축을 통해 보여준 최초의 예라는 점에서 그들을 근대시의 출발점으로 볼 수 있다.

  (3) 두 사람의 태도는 '고난의 전적인 수용과 전망에 대한 확고한 내기의 동시성'이라는 점에서 전형적인 비극적 세계관을 보여준다.

  (4) 비극적 세계관은 순수한 태도로서 완성된다. 거기에는 시간이 부재한다. 즉 삶의 전개가 없다.

  (5) 김영랑[그리고 박용철]이 시간을 처음으로 불어 넣는다. 즉 시간의 형식의 한국적 전형을 최초로 구축한다. 이로부터 오늘날 '한국적 서정시'라고 불리는 시의 원형이 만들어진다.

  (6) 김영랑이 만든 시간의 형식은 '기다림'이다. 이 기다림은 '세계의 귀환'이라는 관점에서 미래 전망을 가늠할 때 열리는 태도이자 삶의 형식, 즉 존재양식(mode of existence)이다.

  (7) 김영랑이 이 형식을 구축하는 데에는 전통적 심성 혹은 시적 사유의 활용이 큰 도움이 되었다. 즉 향가로부터 '공덕쌓기'가 '기다림'으로 변용되었다. 다만 고래의 공덕쌓기는 대타자에 대한 전적인 의존으로서 '의탁'(혹은 '비난수')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비해, 김영랑의 '기다림'은 주체적 견딤의 성질을 포함한다. 그 특성의 포함으로서 그의 기다림은 '관조'로서의 기다림으로 정착한다. 

  (7-1) 덧붙이자면 한국의 시로 정착하는 데 성공한 상당수의 시들은 이렇게 전통적인 사유 형식을 습합시킨 데서 확산의 근거를 마련하였다. 김소월과 한용운의 시에서 '이별의 부정'은 그들이 창안한 것이 아니라 전래된 옛 시가 혹은 종교적 심성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것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 아니라 거기에 근대적 자아의 태도를 배합하여 전혀 새로운 정합적 언어형식을 만들었다는 것은 지금까지 내내 얘기해온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변용을 '이별의 소극적 부정'으로의 선회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7-2)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지만 전통적인 사유 혹은 심성은 근대적인 것에 의해 극복되었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여전히 한국인의 집단무의식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전통성으로 오늘날의 근대적 생활에 영향을 끼친다. 오늘 존재하는 한국적 사유의 모습은 근대적인 것이 중앙을 차지하고 있지만 전통적인 사유, 탈근대적인 사유, 여타의 이질적인 사유들이 주변부에 다양하게 분포하고 합종 · 연횡하면서 중앙과의 접경에서 부단히 전쟁하고 있는, 그런 사유 구성체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8) 김영랑의 시가 처음으로 시간의 형식을 구축했다고 하지만, 그것이 모든 한국시의 뿌리라는 것은 아니다. 거의 비숫한 시기에 다른 시간의 형식들도 형성되기 시작한다.

  (9) '기다림'의 계열에서 이육사적인 방향이 김영랑적인 것과 갈라진다. 김영랑적인 '기다림'이 관조로서의 그것이라면 이육사의 기다림은 '행동'으로서 의 기다림이다.

  (10) '기다림'과는 다른 태도를 보여주는 시인들이 출현하였다. 우리는 정지용과 이상을 그 출발점에 놓을 수 있다. 그 태도와 그것의 시적 성취들에 대해서는 차후에 논의될 것이다. 여하튼 이렇게 해서 몇 개의 기본 형식들이 한국시의 주추로서 놓이게 되었다(현재로서는 네 개로 추정한다. 김영랑, 이육사, 정지용, 이상. 그러나 아직 짐작일 뿐이다.)

  (11) 이 기본 형식들이 처음 정착한 대로 완전히 고정화되지는 않는다. 그것 역시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움직인다. 그러는 과정 속에서 최초의 형식은 풍요로워지기도 하고 혹은 거꾸로 다른 형식 및 태도에 의해서 교체되기도 한다.

  (12) '관조로서의 기다림'은 풍요로워진 경우에 해당한다. 그래서 그 형식은 '한국적 서정'이라는 총칭어로 부를 수 있을 만큼 미만한 시쓰기의 형태로 자리 잡는다. 오늘날에도 그 원시적인 모습이 빈번히 발견되는 김영랑적인 시형은, 그런데, 서정주에 와서 근본적인 변화와 확장을 겪게 되었다.

  (13) 서정주는 김영랑적인 시를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는데도 불구하고 핵심이 되는 어떤 것은 공유하였다. 그 때문에 김영랑이 최초의 돌을 놓은 '한국적 서정시'는 더욱 확산되었고, 오늘날 김영랑적인 것과 서정주적인 것이 매우 혼잡스럽게 뒤섞인 채로 생장을 지속하고 있다. "생장을 지속하고 있다"라는 진술은 이런 유형의 시풍에 거역하여 시의 혁명을 꾀한 많은 시인들이 노년에 이르러 자신이 거부했던 시풍으로 귀속하는 경우를 빈번히 볼 수 있기 때문에 '진한' 의미를 띤다. 희한한 일이지만 그렇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한국적 서정'이라는 '총칭'이 거기에 붙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논의와 연장선상에서 서정주의 시를 살펴볼 생각을 하였다. 앞에서 한 번 보았던 「추천사」에 관한 얘기는 우리의 관찰의 후반부에 속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잠시 멈추기로 한다. 독자 여러분이 직접 골똘히 들여다 볼 시간이 필요할 듯해서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한국인의 보편적인 사유는 미당적인 것에서 그리 멀지 않다고 내가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이가 친일한 데 대해 그리고 격렬하게 공격하는 사람들에게조차, 내 짐작이 맞다면 서정주 시의 세계관을 살피는 일은 사실상 오늘날의 한국인 특유의 사유양식을 살피는 일일 수도 있다. 이런 내 생각에 즉각 반박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분들도 한 번 노기를 누그러뜨리고 호기심을 발동해 보시기를 권해드린다.

  탐구의 실마리는 다음 두 가지에 있다. 첫째는 기다림의 지속에 관한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기다리다가 지치면 직접 찾아나서는 게 보통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데 이 김영랑적인 시형에서 '찾아 나섬'이라는 태도는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떠남'에 대한 이야기는 무성하지만 시적 주체가 직접 나선 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기다림'의 태도를 버리고 다른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이다. 다음 서정주적 변용에 관한 것이다. 기다림의 태도는 서정주의 시에서도 지속된다. 그러나 서정주는 이 기다림을 다른 것으로 치환함으로써 그 지루함을 넘어버렸다. 기다림은 계속되지만 그 태도는 기다림이 아니다. 그것은 무엇인가? 그 무엇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 단서가 「자화상」의 맨 마지막 행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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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2017-9월호 <기획연재 19/ 정과리의 시의 숲속으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