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그 가문
심은섭
태백시 장성광업소 맞은편 태백중앙병원 611호
진폐증 환자실
한 노인이 사타구니 쪽으로 고개를 구겨놓고
누워 있다 그 병상 옆에 노인을 빼닮은 쉰 살 넘긴
노총각도 새우등을 한 채 누워 있다
두 사람의 눈길이 병상과 병상 사이에 모여 앉아
지상에서 마지막 눈물로 죽음의 층계를 닦고 있다
낡은 엔진소리가 세습된 노총각은
노인이 걸어온 날들을 떠올렸다
빈 도시락에 캄캄한 어둠을 채워 퇴근하던 날
이빨 빠진 사기술잔 입에 물고
낡은 유행가를 부르며 허공에 꿈을 묻어버리던 일
기침소리 골방 가득해도 빈 지갑의 주름을 펴려는
손바닥의 굳은살은 박달나무보다 단단했다
갱도 275km 속에서 수천 년을 침묵하면
검은 돌의 어깨를 곡괭이로 내리찍던
노인의 숨소리는 초침이 돌아갈수록
공터에 버려진 경운기 엔진소리를 냈다
산소마스크가 그에게 물을 뿌려주지만
서늘한 보자기는 그의 얼굴을 덮었다
칸데라*의 심지에 더 이상 불을 밝히지 못하고
그가 밀던 탄차에는 달빛만 가득 실려 있다
밝고 오르던 죽음의 층계를 한 계단 남겨놓은
쉰을 넘긴 노총각
그의 누대를 떠올릴 사내아이가 없어
병상 베갯머리에 앉은 누이가
시멘트처럼 굳어지고 있다
*candela : a lantern(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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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K과장이 노량진으로 간 까닭』에서/ 2009.7.7<문학의전당>펴냄
*심은섭/ 강원 강릉 출생, 2004『심상』으로 등단
2006《경인일보》신춘문예 당선
2008『시와세계』로 문학평론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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