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밖의 어느 계절
이신
잎이 질 무렵,
거리엔 따뜻한 꽃들이 먼저 일어났다
질서 있게 피어나 노래하기 시작했다
원칙과 신뢰의 가면이 벗겨지고
허구의 얼음 왕좌가
순식간에 녹아내리자
체념을 동지로 삼던 언어들이
비로소 깃을 턴다
나는 가난한 자였으므로
그 계절은 침묵조차 두려운 겨울이었고
표현할 수 없는 몸짓은
가슴에 피워 올린 노란 리본뿐이었으며
나는 차가워져야 했으므로
눈물 속, 많은 주검들에 대해
더 뜨거울 수 없었다
봄인 듯 겨울, 가을인 듯
겨울이었던 그때
밤거리를 서성이던 가로수들이
연둣빛 깃발을 내걸었다
두 손을 모으고 흐느끼던
광장의 그림자들에게서는 향긋한
얼굴이 자라난다
새 눈과 새 입과 새 귀가
곳곳에 피어나
찬란하게 춤을 추는 지금은
기어이, 기어이…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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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2017-여름호 <신작시> 에서
* 이신/ 2005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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