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바깥들/ 원구식

검지 정숙자 2017. 5. 28. 13:03

 

 

    바깥들

 

    원구식

                               인간은 발걸음을 모방하려 했을 때,

                            다리와는 닮지 않은 바퀴를 창안했다.

                            인간은 이렇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초현실주의를 실천한 것이다.

                                                          -아폴리네르*

 

 

  최초의 책은 아마도 하늘에서 내려와 

  돌 위에 새겨졌을 것이다. 일곱 개의 별이 박힌 이 책을

  사람들이 무덤으로 삼았으나, 책이 어찌하여

  별의 부적이 아니었겠느냐? 산 자들이

  그 앞에서 죽은 자들을 장사지내고, 열흘 밤

  열흘 낮 동안 점을 친다. 무서울 정도로 단순한

  나의 애인아. 진정한 삶은 이 세상에 없다.

  몽매한 현자들이 점토판의 진흙이 굳기도 전에

  쐐기로 제 두 눈을 찌르고, 하늘의 문자를 모방하여

  불멸의 책을 구워냈으나, 살아서

  돌아온 자가 없다. 그러나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고색창연한 먼지로 뒤덮인 도서관의 책들을.

  형이상학으로 가득한 이 책들은 온통

  호명을 기다리는 죽은 아버지들의 이름들뿐!

  도둑처럼 날이 저물고, 생각 없는 별이 뜬다.

  골짜기의 백합보다 순결한 내 애인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중개하는 밤이 왔다. 죽음으로 봉인된

  책이 열린다. 오, 존재가 사라진 공간 속으로

  날아오르는 흑조들. 그 뒤로 죽은 아버지들이

  전쟁 포로처럼 돌아온다. 이곳은 '바깥'들이 모인 '바깥'의

  바깥들. 존재 없는 존재자들이 사는 곳. 죽은 자들이

  산 자를 낳는 곳. 사물들이 모두 거울이 되는 곳.

  나는 흑조를 쫓아 절벽 끝까지 내달린다.

  순간 절벽이 나를 비추고 흑조가 나를 비춘다. 번쩍번쩍 

  비추는 대로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내 오늘 밤

  저 낭떠러지 아래로 몸을 던져 허공에 떠

  유물론자와 물질주의자의 차이를 제법 유치하게

  말해 줄 수도 있지만, 애인이 서둘러 책을 덮는다.

  최초의 아버지들이 미지의 행간 속으로 사라진다.

  울지 마라. 모두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도서관엔 아직도 먼지를 털어내며 읽어야 할 책들이 수북하다.

  옜다, 너도 한 권 가져다가 저잣거리에서

  비린내 나는 생선이라도 한 마리 바꿔 먹으렴.

    -전문-

 

  * 황현산 역

 

 

   원구식의 시는 인류의 역사와 문명에 대한 장중한 사유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의 이러한 사유가 아이러니와 역설, 비유를 동원하는 시를 통해 제시되기 때문에, 독자는 스스로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가야 한다. 인류의 삶과 책의 문제에 대한 사유를 담고 있는 「바깥들」 역시 독자는 어떤 수수께끼와 마주한 느낌이 들 것인데, 이 시에 등장하는 비의적인 책과 시 자체가 공명한다고 할 수 있겠다./ 아폴리네르의 유면한 말, 바퀴야말로 초현실주의적인 실천이라는 말을 제사로 사용한 것이 이 시를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 같다.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버린 바퀴는 인간이나 동물의 보행을 모방하여 창조되지 않았다. 이를 보면, 현실의 모방을 뛰어넘는 초현실주의적 상상이야말로 현실을 변화시키는 동력이다. 현실을 구성하는 세계 너머의 초현실이 세계를 변화시킨다. 이 초현실을 '바깥'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내부를 변화시킬 가능성을 가진 바깥. 그렇기에 진정한 삶은 초현실, 바깥에 있다고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나의 애인아, 진정한 삶은 이 세상에 없다"고 시인이 말하는 것은 이 때문이지 않을까. 그런데 책이야말로 '바깥'을 형성한다./ 이 시에 따르면, 책은 저 초현실적인 하늘에서 떨어진 별들이 돌에 새겨짐으로써 탄생했다. 그렇게 책은 별의 무덤이자 비명碑銘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책-무덤' 앞에서 "죽은 자들을 장사지내고" 점을 쳤던 것인데, 그 이후로도 책은 근본적으로 죽음이 봉인되어 있는 무엇인 것으로 존재한다. 저 도서관의 책에는 "호명을 기다리는 죽은 아버지들의 이름들"이 새겨져 있다. 사실 책을 쓴다는 일은 삶을 저 책속에 투입하여 봉인시키는 것이요, 그것은 죽음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 아니겠는가./ 이 책은 현대 세상에서 어떻게 존재하는가? 시를 더 읽어보자. "산 자와 죽은 자를 중개하는 밤"이 되면 "죽음으로 봉인된/ 책이 열"리고, 그리하여 "죽은 아버지들이/ 전쟁 포로처럼 돌아"와서 '이곳'이 "'바깥'들이 모인 '바깥'의/ '바깥들'" 되면, 세계는 "존재 없는 존재자들이 사는 곳"이자 "죽은 자들이/ 산 자를 낳는 곳'이 된다. 존재 없는 초현실이 현실을 낳듯이 말이다. 그 죽은 자들은 '흑조'로 날아오르는데, 시적 화자는 이 흑조를 뒤쫓으면서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존재로 나아갈 수 있었다. 즉 그는 이를 통해 다시 애인에 의해 폐쇄되고, "최초의 아버지들이 미지의 행간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이 죽은 아버지들이 유폐되어 있는 곳이 도서관이며, 그곳엔 '아직도' "읽어야 할 책들이 수북하다"고 할 때, 세상은 여전히 자신을 변화시킬 잠재성으로서의 '바깥'을 무수히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마지막 두 행이 보여주는 아이러니는 수수께끼처럼 독자인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데, 이 두 행은 독자를 또 다른 사유에로 이끄는 미끼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시를 다 읽고 난 후 우리는 곧 '저잣거리'의 "비린내 나는 생선" '한 마리'와 도서관의 책 '한 권'의 관계에 대한 사유로 이끌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성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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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사』2017. 3-4월호 <시사사 리바이벌>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