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누선(淚腺) / 송재학

검지 정숙자 2011. 3. 6. 03:11

    
   

   누선(淚腺)


    송재학



  내가 우는 게 아닙니다 징이 우는 게 아닙니다 귀 기울이는 당신도 울고 있지 않지만 울음은 모두를 감싸고 돕니다 비에 씻기는 울음입니다 내가 불타는 것입니다 징이 불타면 결국 당신은 불타는 울음소리를 듣고 있는 겁니다 울음 우는 강과 소지(燒紙)하는 돌의 경계는 은은합니다 소리는 좁장한 귓바퀴 속이 답답하고 귀는 소리의 안에서도 쫑긋합니다 급기야 저 징은 견디지 못하고 미세한 틈을 만들다가 산산히 부서집니다 목청에서 피가 토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조각조각 부서지기 직전의 반듯한 수면이 바로 징의 울음이 마지막 눕는 곳입니다 더 늦게 깨지기 위해 징은 제가 내야 할 소리보다 더 많은 횟수의 메질을 견뎌왔습니다 더 오래 울기 위하여 울음을 망가뜨리고 성대를 훼손했습니다 왜 더 오래 울어야 하는가 우김질, 닥침질, 벼름질하는 봉두난발을 떠올려봅니다 금이 많이 가서 더 이상 소리가 나지 않는 오래된 징에는 모두 누선(淚腺)이 있습니다 그 징은 자신이 몇 만 번의 소리를 냈는지 모릅니다 다만 죄다 울음이었다고 기억할 뿐입니다


  * 시집『내간체를 얻다』에서/ 2011.1.20 (주)문학동네 펴냄

  * 송재학/ 경북 영천 출생, 1986년『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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