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현황(天地玄黃)
박제천
계곡에서 태어난 물의 속살은 투명했다
그 속살에 이름을 새길 때마다
환등기처럼 보고 싶은 얼굴이 나타났다
아, 사람은 죽으면 물이 되는구나
계곡 속에서는 소리의 결이 낮아졌다
그 결에 입술을 문대자
메아리처럼 기억의 소리들이 들려왔다
아, 물이 된 사람은 다시 바람이 되는구나
물과 바람의 구름 스크린 너머
계곡의 끝에 다다르자
어둠 속 미농지의 하늘, 저쪽 생명의 땅이 나타났다
이제껏 계곡을 오르며 만난 나무며 돌멩이, 쉬리며 빙어들,
타임머신 앱에서도 만나지 못한 부모형제며
두두물물이 모두 거기 있었다.
바로 그날, 나도 계곡이 되었다, 곡신이 되었다.
-전문, 『문학과창작』2016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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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표현』 2017-3월호 <이 달의 시인/ 근작시>에서
* 박제천/ 1945년 서울 출생, 1965~66년 『현대문학』3회 추천 완료, 시집 『장자시』『천기누설』등, 공저『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 저서『시를 어떻게 고칠 것인가』,『박제천 시전집』, 한국시협상, 바움문학상 등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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