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천지현황((天地玄黃)/ 박제천

검지 정숙자 2017. 3. 14. 12:13

 

 

    천지현황(天地玄黃)

 

    박제천

 

 

  계곡에서 태어난 물의 속살은 투명했다

  그 속살에 이름을 새길 때마다

  환등기처럼 보고 싶은 얼굴이 나타났다

  아, 사람은 죽으면 물이 되는구나

 

  계곡 속에서는 소리의 결이 낮아졌다

  그 결에 입술을 문대자

  메아리처럼 기억의 소리들이 들려왔다

  아, 물이 된 사람은 다시 바람이 되는구나

 

  물과 바람의 구름 스크린 너머

  계곡의 끝에 다다르자

  어둠 속 미농지의 하늘, 저쪽 생명의 땅이 나타났다

 

  이제껏 계곡을 오르며 만난 나무며 돌멩이, 쉬리며 빙어들,

  타임머신 앱에서도 만나지 못한 부모형제며

  두두물물이 모두 거기 있었다.

 

  바로 그날, 나도 계곡이 되었다, 곡신이 되었다.

    -전문, 『문학과창작』2016년, 가을호

 

    -----------------

  *『시와표현2017-3월호 <이 달의 시인/ 근작시>에서

  * 박제천/ 1945년 서울 출생, 1965~66년 『현대문학』3회 추천 완료, 시집 『장자시』『천기누설』등, 공저『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 저서『시를 어떻게 고칠 것인가』,『박제천 시전집』, 한국시협상, 바움문학상 등 다수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