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바다로 가는 나무/ 황구하

검지 정숙자 2011. 2. 22. 00:51

  바다로 가는 나무


   황구하



  남장사 상수리나무 큰 그늘

  넘치고 넘쳐나 물소리에 닿는다


  지난겨울 끝자락 한쪽 팔

  폭설에 내려주고도

  뻗어나가는 두터운 그늘에 들면


  옹이를 열어젖힌

  굽은 등걸 속 둥근 물결

  거침없이 흘러나왔다


  깊숙이 감춰두었던 수의(水衣)까지

  가느다란 햇살의 손을 빌려

  골짜기 골짜기로 보내주었다


  눈치 빠른 딱따구리도

  따신 햇볕 날개에 퍼 담아

  상수리나무 속으로 들앉는다


  거기 장수풍뎅이, 사슴벌레, 참다람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애기벌레들까지

  연방 들락거리며 물소리를 퍼 나른다


  저토록 두껍고 딱딱한 외피를 두르고

  태초의 물너울을 키우고 있다니


  천 년 지켜낸 남장사

  상수리나무 숲 바다로 가는 물결을 본다

 


  * 시집 『물에 뜬 달』에서/ 2011.2.1<詩 와 에세이>펴냄

  * 황구하/ 충남 금산 출생, 2004년『자유문학』으로 작품 활동 시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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