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에세이>
미안해, 매미야
채상우
여름이다. 여름 중에서도 삼복더위 한가운데다. 벌써 며칠째 열대야가 이어지고 있다. 선풍기도 에어컨도 부채도 어느 것 하나 소용이 없다. 그저 가만히 좀비처럼 누워만 있다. 차라리 좀비였으면 싶다. 만약 좀비라면 적어도 더위 따윈 느끼질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좀비는 더위나 추위를 모를까, 진짜 그럴까, 그렇다면 왜 그럴까… 뭐 이런 되도 않은 잡생각도 쉽게 이을 수가 없다. 더우니까, 덥고 더우니까 말이다. 더워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거리다 날이 밝아 올 때쯤에야 말 그대로 지쳐서 잠이 든다.
아니, 잠이 들 뻔했다. 겨우 잠이 들까 싶었는데, 매미가 운다. 오지게 운다. 베란다 방충망에 붙어서 운다. 그것도 두 마리가, 하나가 울다 잠시 그치면 다른 하나가 연이어 울고 그러다 둘이서 누가 누가 목청이 큰지 내기라도 하듯 대차게 울고 운다. 눈은 자꾸 감기는데 일어날 기운은 없고 날은 자꾸 밝아오고 그만큼 훌쩍훌쩍 더워지고 매미는 그보다 더 그악스럽게 울어 대고, 지옥이 따로 없다. 매미야, 내가 잘못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잘못했다. 그러니 이제 제발 다른 곳으로 가 줄 수 없겠니, 제발. 애원한다. 애원하다 그만 욕까지 하고야 만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미는 운다.
실은 여름이 시작되기 전엔 내심 매미 울음소리를 기다렸다. 나는 여름을 무척 좋아하는데, 아무래도 매미가 짱짱하게 울어 줘야 여름답지 않은가 싶어서다. 그리고 매미 울음소리 하면 어릴 적 살던 집 마당의 평상이 생각나곤 한다. 나는 경북 영주라는 소읍에서 자랐는데 여름밤이면 평상에 식구들이 둘러앉아 모기향을 잔뜩 피워놓고 수박을 먹곤 했다. 그때 들리던 매미 울음소리가 참 좋았다고 기억한다. 물론 기억이라는 게 선택적이고 그런 만큼 쉽게 변질되기 마련이지만, 아무려나, 난 그렇게 기억한다.
그리고 여름마다 그 평상을 문득 기억하곤 하는 다른 까닭 하나는 외할머니 때문이다. 여름이면 외할머니께서는 그 평상에서 나를 당신의 무릎에 누이곤 부채를 설렁설렁 부쳐 가며 옛날 이야기들을 조곤조곤 들려주시곤 했다. 외할머니께서 내게 들려주신 이야기들은 이런저런 전설들과 민담들로부터 시작해서 경전에 실린 고사들, 옛 양반가의 속사정이나 일제 때 이야기, 어린아이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집안 대소사들의 이면, 그리고 동네에 떠도는 그저 그런 소문들까지 그야말로 조금이라도 오래되었거나 이야깃거리가 될 만한 것이라면 가림이 없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조선 시대 임금이 쓰던 모자 곧 익선관(翼善冠)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그 모자의 윗부분이 매미의 날개를 닮았다고 해서 그런 이름을 붙였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생각이 난다. 그 후로 한동안 나는 동화책이나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임금이 나오면 어쩔 수 없이 매미가 떠올라 피식피식 웃곤 했다. 매미래요, 임금님 머리에 매미래요, 얼레리꼴레리 뭐 이러면서 말이다. 물론 외할머니께서는 이보다 임금의 모자에 왜 매미의 날개를 담아 놓았는지를 이야기해 주셨을 것이지만, 잊어버렸다. 잊어버려서 찾아보니 그 이유는 매미가 다섯 가지의 덕, 즉 그 입 모양이 선비의 갓끈처럼 곧아 문덕(文)이 있고, 이슬만 먹고 사니 청덕(淸)이 있고, 집을 짓지 않으니 검덕(檢)이 있고, 농부의 곡식을 탐하지 않으니 염덕(廉)이 있고, 계절에 따라 허물을 벗으니 신덕(信)이 있기 때문이란다. 과연 임금의 모자에 새겨 둘 만큼 훌륭하고 고귀하구나.
그런데 그런 매미가 지금은 천덕꾸러기 신세다. 여름이면 매미 울음소리 때문에 불편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사연들이 라디오 방송을 심심찮게 메우곤 한다. 그 가운데 일전에 들은 이야기는 좀 충격적이었는데, 이제는 적어도 도시에서는 매미를 유해곤충으로 지정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었다.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이런 말까지 할까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매미를 해충으로 지목하는 건 너무하다 싶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나 또한 매미 때문에 편하게 잠을 못 잔 경험이 없지 않을 뿐더러 매미한테 대놓고 욕까지 했으니 이런 말을 한다는 게 겸연쩍고 민망하기도 하다.
그런데 다들 잘 알겠지만 매미가 해가 갈수록 더욱 우렁차게 울어 대는 까닭은, 특히 도시에서 유독 그러는 이유는 도시가 정말이지 시끄럽기 때문이란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모른다. 도시가 얼마나 시끄러운지 말이다. 나도 사실 잘 모른다. 도시의 소음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매미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면 참 억울할 것이다. 칠팔 년을 땅속에 있다가 나와 보니 하필이면 대도시고, 그것도 대도시 한가운데고, 그것도 대도시 한가운데 좁디좁은 화단이라면 얼마나 황당하고 절망했겠는가. 게다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고작 한두 주일이라면 사력을 다할 수밖에. 짝은 찾아야 하는데 몸이 부서져라 울어도 자동차 엔진 소리에 터러렁 막히고 횡단보도 신호음에 때르릉 막히고 사람들 고함 소리에 뭉통뭉텅 막히고 막히고 또 막히고, 이런데도 매미가 아직까지 인간을 공격하지 않고 있다는 게 차라리 신기하지 않은가.
조금만 생각해 보면 누가 누구에게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있는지는 자명하다. 매미가 아무리 시끄럽게 운다고 해서 사람이 죽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람이 이룬 도시 때문에 매미는 죽어라 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만약 매미를 유해곤충으로 지정한다면 매미는 적어도 도시에서는 몰살당할 것이다. 이것이 이 지구에서 인간이 행하는 죄악들 가운데 아주 큰 하나다. 불편하다고 해서 인간은 지구상의 수많은 생물들을 멸종시켰고 지금도 그러고 있으며 어쩌면 앞으로 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과연 누가 유해한가. 이 지구에서 유해한 종은 어쩌면 오직 하나다. 지금껏 자연을 파괴해 온 종은 오로지 인간뿐이다. 도시만이 아니다. 두꺼비가 없고 물뱀이 없는 논은 경작지이지 자연이 아니다. 늑대가 없고 곰이 없는 산은 공원이지 자연이 아니다. 매미는 자연 속에서는 결코 시끄럽게 울지 않는다. 대도시의 매미들은 구애를 하는 게 아니라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이다.
미안하다. 매미야, 미안하다. 내가 정말 잘못했다. 멧돼지야, 고라니야, 늑대야, 여우야, 구렁아, 삵아, 호랑이야, 그리고 지구에서 사라졌고 지금 어디에선가 쫓기고 살육당하고 있을 그 모든 생명들이여, 미안하고 다만 미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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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크에코플러스+ 『MOOK eco PLUS+』vol. 01 생태+문학
* 진행|함께하는그룹파란 / 2016.11.7. <국립생태원 출판부> 발행
* 채상우/ 2003년 『시작』을 통해 시 등단, 시집으로 『멜랑콜리』『리튬』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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