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2016 만해축전 학술세미나 ▒
현대 불교시인 연구Ⅱ
자책저음 (自責低吟)*
신석정(1907~1974, 67세)
창밖에서는
보리수 꽃향기가 진하게스리
퍼져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을 끝내던 오월
그 어느 날이었습니다.
인중이 유달리 기인
석전(石顚) 스님은 『기신론』을 사이에 놓고
- 신군! 인제 신심이 나는가?
책장에 걸어놓은 염주를 볼 때마다
신심이 없는 나를 꾸짖으며
석전 스님의 그 기인 인중을 생각합니다.
오늘도
대숲을 스쳐가는 바람소리에
문득 스님의 음성을 귀담아봅니다.*
-전문-
* 신석정전집 간행위원회, 『신석정전집』,2, 국학자료원 2009. p34.
▶ 신심(信心)과 시심(詩心)의 행방- 신석정의 경우(발췌)_ 고재석
만해 한용운(1879-1944)이 평생 존중해 마지않았던 영혼의 도반(道伴)이자 선배였던 석전 박한영(1870-1948)을 그리워하며 쓴 시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석전은 한국근대시사 아니 정신사에서 백의정승과도 같은 학승이며 시승이었다. 육당 최남선(1890-1957)은 그를 평생 스승으로 모시고 다녔고, 위당 정인보(1893-1950) 역시 사숙하며 그의 앞에서 깊게 머리를 조아렸다. 또한 그는 젊은 날의 치기와 교만을 반성하며 찾아온 신석정(1907-1974)과 서정주(1907-2000)를 언제라도 푸근하게 맞아주던 '외할머니의 뒤안 툇마루'와도 같은 큰 스승이었다. 그런 점에서 석전 박한영과 만해 한용운 밑에서 영향을 받았던 선후배들의 교유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없지 않다고 생각된다. 어쩌면 우리는 신석정이 누구보다 재주를 아꼈던 미당 서정주와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을 못내 애석해한 조지훈(1920-1968)이 이 두 사람과 드러나게 또는 드러나지 않게 맺은 인연의 이면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정신사의 한 계보를 확인하게 될지 모른다.
------------------
*『불교문예』2016-가을호 <특집 2016 만해축전 학술 세미나/ 현대 불교시인 연구Ⅱ/ 고재석 편> 발췌
* 고재석/ 『한국근대문학지성사』『숨어있는 황금의 꽃』『한용운과 그의 시대』『일본현대문학사』(상하) 등, 현재 동국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만해연구소장
'작고 시인의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울음이 타는 가을 강/ 박재삼 (0) | 2016.10.09 |
---|---|
송기한_박남수 시와 자연(발췌)/ 새1 : 박남수 (0) | 2016.10.03 |
송정란_김일엽의 초기 불교시 고찰(발췌)/ 시계 소리를 들으면서 : 김일엽 (0) | 2016.09.29 |
김창희_바람의 말(言)/ 적막강산 : 임강빈 (0) | 2016.09.08 |
최일화_ 피안의 세계로 날아간 영혼의 새(발췌)/ 미명의 신앙 : 랑승만 (0) | 2016.07.21 |